전체 기자
닫기
박주용

rukaoa@etomato.com

꾸미지 않은 뉴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상)'담대한 구상' 실종…예견된 '한계'

북, 거듭 거부로 수용 가능성 낮아져…여당 내에서도 "매번 써먹던 레퍼토리" 비판

2022-09-21 16:45

조회수 : 2,802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북정책 로드맵 '담대한 구상'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언급 자체를 피했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담대한 구상'을 공식 제안했지만, 이후 북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현실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비핵화 선조치를 전제로 대대적인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이 실패한 상황에서 '복사판'으로 불리는 '담대한 구상'도 서둘러 좌초 길에 올랐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한다"며 자유 수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강조했다. '자유'를 무려 21번이나 언급하는 등 취임식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이번 연설에서 담대한 구상을 비롯해 북한과 관련된 현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 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북 메시지는 담대한 구상 발표에서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대북 메시지를 냈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박근혜, 문재인 두 전직 대통령은 북핵, 한반도 평화, 북한 인권을 직접 거론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5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하며 한반도 종전 등 전쟁 위험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5번의 연설 중 3번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를 위해 미국 및 국제사회 설득에 나섰다.
 
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은 21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유엔총회와 같은 큰 무대에서 한반도 평화와 같은 국제적인 관심사, 또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그것이 북한에 대한 무시 전략이라면 문제해결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윤 대통령이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담대한 구상'마저 꺼내지 않은 이유는 광복절 경축사 제안 이후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발표 이후 정부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와 북핵수석대표 회담을 잇달아 열며 담대한 구상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힘썼지만, 구체적인 진전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과거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유사한 '담대한 구상'을 또 다시 북한에 제안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야당과 같은 논리로 비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진전한다면 우리가 대북 경제 지원을 확실하게 하겠다는 건 지난 정부에서 매번 써먹던 레퍼토리 아니냐"며 "MB(이명박)정부도 그랬다. 발상 자체가 나이브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와 같이 조율하고 조금 더 정교화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핵 무력 법제화에 나서는 등 북한의 강경 대응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 핵 법제화까지 나선 상황에서 담대한 구상을 수용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평가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19일 담화문을 통해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담대한 구상'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사용 문턱을 낮추는 핵 법제화에 나섰다. 북한과의 물밑대화 채널도 사라져 '담대한 구상'의 한계도 명확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전 의원은 "담대한 구상은 결과적으로 비핵·개방 3000의 복사판"이라며 "비핵화를 먼저 하면 잘 살게해주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북한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것이고, 선 핵 포기는 이미 북한이 수십차례 없다고 했다. 핵사용 법제화 관련해서도 먼저 핵 포기는 꿈도 꾸지 말라고 못 박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수도 평양에서 열린 국가재해방지사업총화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이끌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대다수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 연대' 정신을 강조한 이상 담대한 구상을 포함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언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지금 (윤 대통령이)이야기하는 자유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묶어서 진영을 나누는 자유"라며 "담대한 구상이 빠지고 자유를 이야기하니 결국 한반도 진영화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것은 분단이나 대결 구도로, 통합이나 평화라는 가치는 공감을 얻기 힘들다. 아쉽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는 상황에서 담대한 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거듭 거부한 상황에서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또 다시 꺼내지 않은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전 장관은 "담대한 구상은 김여정 부부장이 걷어찼으니 다시 이야기하는 건 안 된다"며 "담대한 구상을 되풀이하지 않은 것은 그마나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윤 대통령이)북한이 끝까지 핵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감시를 하는, 그런 식의 틀을 짜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유엔총회 연설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 박주용

꾸미지 않은 뉴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