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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님

고립된 검찰, 허탈·분노…"법이 정치거래 대상으로 전락"

"여야 합의로 검수완박 강행할 거라 생각 못해"

2022-04-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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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수용하면서 검찰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검찰에서 자체 개혁안까지 마련하며 입법 저지 총력전을 펼쳤는데,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 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내용의 중재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대검찰청이 마지막까지 국회와 국민 설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분노를 넘어 허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여야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처리 합의하자 검찰 고위 간부들이 전원 물러나게 되면서 초유의 지휘부 공백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대검찰청은 22일 "중재안은 사실상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금일 공개된 국회의장 중재안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재안에 6대 범죄 중 4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검찰의 직접 수사권에서 삭제하고 부패·경제는 남겼지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치되면 모든 직접 수사권을 이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완수사도 사건의 단일성·동일성이 충족될 때만 할 수 있어 공범이나 여죄, 위증 혐의는 수사할 수 없다.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은 "저희가 이해하기로는 1년 6개월이 지나면 직접 수사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다"며 "그래서 검찰 수사권이 한시적이다"고 지적했다. 
 
예 부장은 이어 "여야가 합의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검수완박을 강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 기준으로 볼 때 보완수사는 정말 의미가 없다. 경찰에서 해온 대로 공소장, 불기소장을 쓰는 거 말고는 뭘 할 수 있나 회의가 든다"고 했다. 
 
여야의 중재안 수용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구성원 사이에선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창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장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6대 범죄에서 4대 범죄만 삭제하는 게 이해가 안 되고, 특히 선거사건은 검찰의 직접수사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관기관 간담회 등 선거 범죄 대응을 해야 하는데 직접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어떤 자격으로 준비를 할까"라고 한탄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평검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평검사 회의에서는 지금은 검수완박이 아니라 검수완반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국민에게 반환해야 되는 때가 아니냐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이제 대배심도 해보자는 개혁 논의를 했던 거다"며 "수사 절차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자, 수사심의위원회를 법제화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대배심을 하자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되니까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 사태를 막지 못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한 평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이번 주 내내 있었던 이해하기 어려운 총장님의 출근길 발언, 모여서 근황토크만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고검장님들의 회의 발표 내용, 아직까지 침묵하는 상당수의 검사장님들을 보면서 누적된 실망과 좌절은 분노가 됐다"고 썼다. 해당 검사는 "법안의 통과가 예상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위에 있는 책임있는 분들은 저희에게 충분한 해명과 대답도 없이 그냥 사직서만 하나 제출하고 도망가려 한다"며 "총장님은 청와대 및 국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눈 것인가, 고검장들끼리 모여서 어떤 대화는 나누신 건가. 사직할 생각이 있더라도 답변하고 나가시라"고 일갈했다. 
 
형사소송법의 근간이 되는 내용을 여야 합의로 조정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기본법의 근본을 흔드는 부분을 정쟁의 대상으로,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그 자체가 경악스럽다. 국회의장님께서 중재안으로 내시면서 얼마든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기본법의 지위를 떨어뜨려 놓았다"며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는 거라 법률가의 시각에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20일 진행됐던 평검사 대표회의에서도 이날 중재안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공개했다. 평검사 대표회의는 "4개 중대범죄를 현재 검찰 직접수사에서 제외하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입법의 의도를 알기 어렵고, 특히 공직자범죄·선거범죄에 대한 검찰수사를 박탈하려는 것에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며 "여야가 내용에 합의한다면 개정을 서두를 이유가 없고,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한 의견수렴과 숙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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