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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시행령 정치·거부권 정국에 무너진 삼권분립

여소야대에 정국 막히자 시행령 '우회로' 삼아 정국 운영

2023-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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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를 공식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바르샤바 대통령궁에서 열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한·폴란드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에서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윤석열정부 들어 '시행령 정치·거부권 정국'이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령과 거부권을 앞세워 입법권 무력화에 나서면서 국가 기반인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법치 강조한 윤 대통령'시행령 정치'로 역주행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조만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관련 시행령 개정 등을 관계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에 권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회·시위 단속 기준을 높이고, 집회 제안의 범위를 넓히는 안이 유력합니다. 앞서 대통령실이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3일까지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집회·시위의 요건·제재 강화' 안건을 올린 결과 추천 12만9416건, 비추천 5만328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은 야간집회 금지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박성민 의원은 지난달 12일 현행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진 후'로 규정된 옥외집회와 시위 금지 시간을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로 고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미 11일 전기요금과 텔레비전 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 징수를 분리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재가했습니다.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해당 안이 의결된 직후였습니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투표 결과를 앞세워 국민 상당수가 분리징수를 원하고 있다며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주무 부처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여당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대통령실은 국민제안이라는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법안 처리가 가로막히자 시행령이라는 '우회로'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애초 시행령은 국회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먼저 대응하라고 행정부에 내준 권한이지만, 유독 현 정부 들어 쟁점 법안을 강행하려고 할 때마다 쓰이는 모양새입니다.
 
인사 넘어 법률까지 거부권…"야당 적으로 생각"
 
여기에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도 대통령 손에 의해 사장되는 거부권 정국이 현 정부 들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윤 대통령은 지난해 야당이 ''바이든·날리면' 논란 책임을 물어 통과시킨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은 물론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통과시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연거푸 거부했습니다.
 
인사에 이어 법률안까지도 손을 댔습니다. 4월 민주당이 주도해 처리한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5월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 등이 담긴 간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여기에 현재 민주당이 단독 처리를 검토 중인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전기요금과 텔레비전 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 징수를 분리하기 위한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재가한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지난해 3월 당선인 시절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약속과 정반대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강경책에 야당도 '눈에는 눈'·'이에는 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정부가 추진 중인 TV수신료 분리징수를 막겠다며 통합징수 근거를 법으로 규정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을 놓고 협의해야 할 정치권이 앞다퉈 시행령과 법안을 내세워 싸우는 행태가 빚어지고 있는 겁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정부에 도대체 상식이라는 게 있었느냐"고 반문했고, 다른 의원도 "검찰 출신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찾기 위해 윽박지르는 데 익숙하지 않았겠느냐. 일반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비판했습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야당을 정국 운영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발목 잡아서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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