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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신구권력 충돌…'정치보복' 잔혹사 되풀이

이명박 인수위·참여정부 갈등…'점령군' 비화

2023-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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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오른쪽) 전 대통령이 지난 3월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저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신구권력 충돌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입니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을 '정치보복'하는 잔혹사가 되풀이되면서 국내 정치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정부의 문재인정부 때리기 같이 현 정권의 전 정권 겨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간 역대 정부 면모를 들여다봐도 전 정권을 적극 활용해 현 정권 지지 토대를 삼은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점령군' 논란으로 시작된 갈등결국 '노무현 서거'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벌어진 이명박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소위 '점령군' 논란입니다. 이명박정부 인수위는 당시 18부4처18청이었던 참여정부 조직을 13부2처17청으로 바꾸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며 파열음을 냈습니다. 이후에도 참여정부 정책과 상반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경제성장률 7% 성장공약 등을 제시하며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사진은 2007년 2월 고 노무현(왼쪽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에서 결재를 하며 김경수(오른쪽) 당시 비서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가 장철영 제공, 뉴시스 사진)
 
특히 인수위가 각 부처에 지난 5년간 정책을 평가하고, 이명박 당시 당선인의 공약 시행계획을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내자 두 정부 간 갈등은 최정점에 달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24일 국무회의에서 "인수위는 정부 정책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공약을 재점검하고 다음 정부의 정책을 준비하는 곳이지 (공무원들을) 호통치고 자기 반성문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다"고 직격했습니다. 이때부터 점령군이라는 말이 일었습니다.
 
이에 이동관 당시 인수위 대변인은 "어떤 자리에서도 호통치고 얼굴을 붉히는 자리는 없다"며 "상황 인식이 잘못됐으니 비판과 진단도 잘못됐다"고 반박하며 신·구 권력 간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문제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정부조직법 개정 법안을 노 전 대통령에게 공포해 달라고까지 요구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신·구 정부 간 갈등이 생겼다. 무리한 요구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갈등은 추후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관련해 뇌물 혐의로 2009년 검찰 소환 조사를 받으며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확정되자 "검찰과 이명박정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철저하게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반면 이명박정부는 "검찰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두 정부 간 갈등은 봉합 없이 영구적으로 남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4월11일 오전 대구 동구 팔공총림 동화사를 방문해 통일대불 앞에서 합장하고 있다.
 
박근혜 인수위·이명박정부, '친이계' 사면 놓고 정면충돌
 
같은 여권의 권력 교체였지만, 박근혜정부 인수위 역시 이명박정부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13년 1월 자신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을 사면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부정부패자와 비리사범이 포함된 것에 대해 박 당선인이 큰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인수위가 이명박정부의 역점 국정과제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민관 공동조사를 요구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밖에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김대중정부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면서 두 정권의 권력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특검은 김대중정부가 산업은행을 압박해 현대그룹 대출을 허가하는 한편, 대출받은 돈을 북한에 송금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대중정부 인사가 줄줄이 구속됐고, 친노(친노무현)와 동교동계가 결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대중정부가 외환위기 책임 규명 명목으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경제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것을 놓고도 두 정부 간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1999년초 국민회의는 김 전 대통령이 지난 14대 대선 때 받은 대선자금의 실체를 직접 밝혀야 한다고 청문회 출석을 종용했고 김 전 대통령 측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출석에 불응했고, 양측의 앙금만 남았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본지와 한 통화에서 "신구 권력이 매번 충돌을 빚은 것은 현 정권이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전 정권을 끊어내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두 정부의 관계에 따라 상호 보완적인 형태를 띠기도 하고, 아예 끊어내고 가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신구 권력 간 갈등이 계속 이어져온 것은 결국 선거 등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현 정부의 의도와도 연결된다"며 "국회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선거에서 국민이 표심으로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제는 국민이 뻔한 수에 속지 않는다"고 바라봤습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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