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손정우와 깊은 산속 판사님
입력 : 2020-07-16 06:00:00 수정 : 2020-07-16 06:00:00
법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이 나오면서다.
 
시민단체가 '사법부도 공범이다'란 푯말을 들고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판부의 의견 한마디 한마디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판의 강도가 더 높다고 봐야 할 듯하다.
 
미 법무부는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고 외신에서는 손정우에 대한 처벌이 달걀 18개를 훔친 사람과 같다는 보도를 했다.
 
국내와 해외, 법률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송환 불허'란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도 이해가 어렵다. 하지만 법적 판단을 업으로 삼는 판사가 법적으로 '틀린' 판정을 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손정우에 대한 1년 6개월 형과 송환 불허 모두 시대와 사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결정이란 생각은 지울 수 없다.
 
10여년 전만 해도 회식 자리에서 성적인 농담을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빠지면 안 되는 주요 안줏거리였다. 수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불과 몇 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품평은 일상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하지 않는다. 불순한 의도가 없이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거나 아무리 호의적인 뜻이라도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행동이나 말을 하는 주체인 자신뿐 아니라 그것을 보고 듣는 상대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도 널리 퍼졌다.
 
미투 운동 등을 계기로 이런 인식과 행동의 변화는 더욱 속도가 붙었고 성폭력을 포함한 성 관련 문제는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법원의 판단에는 이런 흐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성적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던 10여 년 전 전에도 말이 아닌 행위는 범죄였고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특히 그 대상이 아동이나 미성년자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아내가 마음에 들어 '자빠뜨려' 결혼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던 때,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 시대라면 혹시 법원의 판단에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눈으로는 구닥다리란 말로도 부족할 만큼 오래되고 낡은 생각일 뿐이다.
 
통신 수단에 비교하자면 인편에 편지를 적어 보내던 것에서 유선 전화 무선 전화,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를 거쳐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간 지 오래인데 깊은 산 속에 갇혀 서책만 읽느라 스마트폰은커녕 유선 전화의 존재도 모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사법부에 쏟아지는 비판은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도 여론 재판을 조장하는 일도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고 안정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법원이 시대에 적응해달라는 바람이고 그저 본분을 다해달라는 요구다.
 
존중. 법원의 판단에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다. 판단의 주체인 판사가 고귀한 선민이라서 쓰는 표현이 아니다. 늘 쉽지 않은 판정을 내리기 위한 고충을 이해하고 그런 결과로 나온 판결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계와 다름없는 결정만 반복하거나 글만 읽느라 세상사를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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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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