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지하철 디스토피아
입력 : 2019-11-21 00:00:00 수정 : 2019-11-21 00:00:00
지하철. 우리 생활이고, 우리의 일상이며, 우리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자리한 공간이다. 최근 이 공간에 대한 몇 가지 경험을 했다. ‘디스토피아’,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반대말. 지하철을 이용하는 우리 생활은 편리함과 유용함의 집합체로 드러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 모습으로 하루의 시작부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출근길 지하철 풍경은 문자 그대로 완벽한 디스토피아의 고농도 결정체다. 최근 경험이다.
 
아침 730분 출근길. 문이 열린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파고드는 사람들. 좁다란 지하철 객차에 들어서자마자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모두가 자리를 찾아 맹렬히 달려든다. 몇 년 전부터 운용되지만 말 많은 핑크좌석은 무용지물이다. 먼저 앉으면 임자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시선은 필요 없다. 최근 들어 급격히 추워진 탓에 두터운 외투를 모두 입고 있다. 좁다란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앉는다. 옆 사람과의 몸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감정싸움은 벌어지는 중이다. 급기야 고성이 오간다.
 
내가 먼저 앉았다’ ‘그래서 뭐?’ 등등. 포기할 순 없다. 이미 좌석 앞은 빼곡히 들어찬 콩나물시루다. 회사까지 일어서 갈 생각을 하니 지옥이 따로 없다. 서 있는 사람들 얼굴과 표정은 이미 짜증 폭발이다. 누가 먼저 짜증의 폭탄 스위치를 켜는가를 두고 눈치싸움이다. 결국 누군가는 폭발하고, 누군가는 그 폭발에 맞불 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다음 역. 문이 열린다. 누군가 지각을 면하기 위해 밀어 붙이고 들어온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진다. 모두가 폭탄 스위치를 붙잡고 눌러?’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지하철, 좁디좁은 공간. 막힌 공간, 그리고 열린 통로. 기묘한 공간이다. 생존의 개념에서 막힌 공간은 사투(死鬪)를 불러온다. 생명은 본능적이다. 그 본능은 자기 영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하철은 기묘하고 괴이한 공간의 투쟁처럼 다가온다. 더욱 아이러니는 삶의 시계를 시작하는 하루와 그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에 우리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공간이 바로 지하철이다.
 
영화 조커에서도 등장하지 않던가. 주인공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 각성하게 되는 방아쇠를 당긴 공간. 지하철 속 사투의 시퀀스. 그 안에서 아서 플렉은 자신을 지탱해 온 마지막 끈을 스스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세상은 무정부상태의 혼돈으로 급속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지하철이란 공간의 괴이한 상징성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우리 삶에 한 부분을 차지한 지하철. 이 공간에서 우리도 모르게 느끼고 체험하는 디스토피아. 우리 모두가 끈을 잡고 버티는 삶의 연속에서 갈등하는 방아쇠. 책임을 논하며 불출마를 훈장으로 여기고 호기를 부리는 일부 정치인들. 세상 이치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모든 갑들의 짓거리. 우린 이미 출근길 한 복판에서 배우고 또 배우는 중이다. 그 안에 배려와 양보는 없다. 오로지 경쟁과 투쟁과 공격과 폭력만 난무할 뿐이다. 이미 시작부터 모든 것은 잘못돼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지하철 출근길, 그리고 쏟아지는 불편하고 거북스런 기사 탄생. 어쩌면 역설적으로 지하철 디스토피아의 축소판을 이 세상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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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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