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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Re-News)주5일제 하면 다 죽는다더니..이젠 주4일제 '꿈틀'(영상)

2020-08-29 01:00

조회수 : 1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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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로운 소식이 수천 건씩 쏟아지는 ‘뉴스의 시대’, 이제는 ‘구문(舊聞)’이 된 어제의 신문(新聞)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기록해보고자 준비했습니다. 뉴스토마토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출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토요일도 일요일처럼 휴일로 하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나라 경제 망하게 하는 소리'로 치부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던 2003년 8월29일 주5일근무제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변화는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숱한 반대 속에도 꿋꿋이 밀어붙인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법안은 준비 단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도 엄청난 반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재벌 대기업 총수들은 근로시간이 줄면 그 자체로 13.6%의 임금인상 효과가 있어 중소기업들이 다 죽는다며 중소기업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또 대기업으로선 유일하게 당시 현대·기아차 노사가 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주5일제 시행에 합의하자, 전경련과 경총은 집단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공식적으로 '재협상'을 권고하며 현대·기아차의 경영에 간섭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국회에서도 마지막까지 반발이 컸습니다. 심재철 당시 한나라당(지금의 미래통합당) 의원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일 때 주5일제를 도입했다"면서 1만달러대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석 의원 230명 중 141표 찬성(반대 57, 기권 32)으로 통과한 법안. 현대·기아차에 이어 정부와 공공기관을 거쳐 전면 시행된 주5일제. 나라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주5일제 도입 3년 만에 2만달러를 돌파했고, 2018년엔 3만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상 애로'는 임금보단, 이른바 '대기업 갑질'로 불리는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구조가 꼽히고 있고요. 
 
최근엔 주4일제 도입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변화를 주도하는 측은 정부나 시민사회가 아니라 사용자들이라는 겁니다. SK그룹이 지난해 대기업으로선 처음으로 주4일근무제를 실시한 데 이어, 김진표 의원실도 보좌진의 주4일근무제를 실시키로 하며 논의를 이끌고 있습니다.
 
논의는 해외에서도 봇물인데, 일본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 한 달간 주4일제 실험을 해본 결과 사원 1인당 매출이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가능성을 시사하며 세계 경제 모델을 뒤흔들고 있는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주4일제 논의는 더욱 급물살을 탈 전망입니다. 독일과 뉴질랜드, 핀란드 등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주4일제 근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상생을 위한 고통 분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00년 전 국제노동기구(ILO)가 출범하면서 협약 1호로 채택한 하루 8시간·주48시간 근무 시대가 '세계 2위의 과로 사회'라는 오명을 쓴 한국에도 정말 오는 걸까요?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52시간제'가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엄청난 개혁'처럼 시끄러웠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은 이미 2011년부터 주5일제를 전면 시행했고, 근로기준법상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주40시간'보다 12시간이나 초과하는 '주52시간제'가 2018년 한국 사회를 흔든 개혁적인 근로시간 단축이었다니. 어떻게 된 걸까요?
 
사실 2003년 당시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한 '주5일제' 핵심은 주40시간 근무제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종전부터 노사 합의에 따른 12시간의 연장근로가 허용돼 왔습니다. 주5일제라면 당연히 주52시간 근무제를 말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시행되지 않았던 건 바로 고용노동부의 이상한 행정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주5일제가 시행되자 근로기준법상 일주일을 '7일'이 아닌 '5일'로 해석했고, 이에 토요일과 일요일 노동 16시간이 별개로 산정되면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일주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주52시간제가 '상식'이 됐지만, 1919년 채택한 ILO 협약 1호인 주48시간 근무에는 여전히 못 미칩니다. 100년간 이뤄진 기술 변화와 비교해보면, 실질 근무시간이 그때 국제사회가 목표한 이상(idea)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착잡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4일제라는 새로운 어젠다가 떠오른 건 놀라운 변화라기보다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n일제', '주n시간근로제' 외에도 살펴야 할 노동 관련 쟁점이 더 있습니다. 우리 노동법이 점차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건 사실이지만, 한국은 아직 ILO 핵심협약을 다 비준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187개 회원국 중 146개국,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2개국이 ILO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했는데, 한국이 이걸 다 못한 겁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죠.   
 
사각지대도 자꾸 생겨납니다. 최근 '플랫폼 노동'이라는 용어가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데요. 사실 배달앱이나 대리운전앱이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의 등장 자체는 신선하고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문제는 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그렇다고 전문직 프리랜서도 아닌 애매한 고용 형태를 플랫폼 노동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꼼수 고용'입니다. 법률적으로는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불리죠. 이중 하나인 택배기사의 고충은 지난주 저희 뉴스토마토가 영상뉴스 2편을 할애해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노동시간이라는 숫자만으로 ILO가 출범하던 100년 전이나, 전태일의 시대보다 획기적으로 개선된 노동 환경 변화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개개인의 희생에 기반한 전체 경제 발전 역시 평가할 만한 성과입니다. 그렇지만 경제발전의 목표는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지 경제발전 자체가 아니듯, 또 다른 50년 후, 100년 후엔 적어도 '저녁 있는 삶' '주말 있는 삶' 같은 너무나 당연한 표어는 정책 목표나 의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당연한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 다시 보는 뉴스, 리뉴스였습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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