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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대법 "'왕래단절' 15년 세월 보다 '모녀간 정'이 더 중요"

"양부모 이혼 뒤 교류 없었어도, 신분관계 존속의사 있으면 양친자 인정"

2020-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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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생모의 부탁으로 갓난애를 친생자로 출생신고 한 양부모 중 양어머니가, 5년만에 양아버지와 이혼하는 바람에 15년간 양자와 왕래가 없었더라도 양자가 양어머니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면 양친자 관계는 회복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배모씨가 양딸인 A씨를 상대로 낸 '친생자 관계 부존재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조형물 '자유·평등·정의'.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입양승낙 없이 친생자로서의 출생신고 방법으로 입양된 15세 미만의 자가 입양의 승낙능력이 생긴 15세 이후에도 계속 입양의 실질적인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15세가 된 이후 묵시적으로 추인을 통해 무효인 친생자 출생신고가 소급적으로 입양신고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숨진 양어머니가 재혼해 다른 양자를 양육하는 상황에서 전혼의 양자인 피고와의 양친자 관계를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고, 양아버지의 전적인 감호·양육을 받으며 성장했던 미성년자인 피고로서도 양어머니와의 헤어짐을 더욱 소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친 이혼 이후 양어머니와 피고가 서로 연락하지 않는 등 둘 사이의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가 희미해지거나 단절되었다고 볼 여지가 생겼지만 그것은 외부상황의 변화에 주로 기인한 것일 뿐 양어머니와 피고가 장차 둘 사이의 종전 관계를 절연하려고 했던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양어머니가 이혼 이후 피고에 대해 재판상 파양에 갈음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소송 등을 제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피고의 할머니가 피고의 바람에 따라 데려다 주자 피고와의 왕래를 재개한 점 등을 보면 둘 사이의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가 단절됐다고 볼 수 있는 기간에도, 양어머니에게는 피고와의 양친자 관계를 존속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결국 피고에게는 양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더라도 양친자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던 것이고, 양어머니의 사정을 함께 고려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입양의사의 합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 된다"면서 "이와 달리 두 사람의 양친자관계가 단절됐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지 않다"고 판시했다.
 
배씨와 그의 아내 서모씨는 1980년 알고 지내던 A씨의 친모로부터 A씨를 보육시설에 위탁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침 자녀가 없었던 배씨 부부는 A씨를 친생자로 출생신고 하고 친딸로 키워갔다. 그로부터 5년 뒤 배씨와 서씨는 서로 이혼했고, 양아버지 손에 크게 된 A씨는 서씨와 왕래하지 못했다. 1988년 재가한 서씨도 새남편의 아들을 키우면서 A씨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9년 7월, 서씨는 새남편과도 이혼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A씨는 할머니에게 "엄마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2000년 모녀가 만났을 때 A씨는 만 20세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5년 8월 서씨가 사망했다. 그러자 양아버지 배씨가 "서씨와 A는 친자관계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양모인 망인이 피고와의 신분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사망한 이상 제3자에 불과한 원고의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와 망인 사이의 양친자로서의 신분적 생활관계가 상당기간 계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가 입양에 갈음하는 출생신고를 묵시적으로 추인했다고 볼 수 없다"며 배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A씨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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