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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dducksoi@etomato.com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⑩모르는게 약이다

2019-04-19 14:48

조회수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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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모르는게 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모르는게 약이다. 
정말 모르는 것.
모르는 척 하는 것.
아프느니 모르는게 낫다.
그렇다고 나만 모를 수는 없다.
나중에 알게 되면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데로.
아는 것은 집착을 하지 않는 것.
이게 왕도다.
그게 자유로움이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비문.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길까. 욕심이 있어서 물건을 보는
것일까.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일까. 나무가 바람에 흔들
리는 것일까>


자유롭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본다.
바라는게 없으면 두려운게 없다. 
그러면 자유다. 
뭐든지 할 수 잇다. 
소유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유하지 않고 바라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다.
몸이나 마음이나 무언가에 메어 있으면 그것이 노비다.

자유를 깨닫는 시대.
자유를 퍼뜨리는 음악과 철학의 시대
낭만을 넘어 18세기는 자유의 시대다.

하지만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때 잃어버린 자유는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영주가 자본가로 바뀐 것 말고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부유해졌다.
그들은 더 부유해졌다.
곡물은 화폐로 바뀌었다.
자유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인간에게서 자유를 뺏으면 저항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기생충'이 탄생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액션 영화에도 철학이 담겨 있다. 잘 보면 보인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는 현상.
'소외'라고 부른다. 
우리는 소외됐는가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유사이례 독특한 시스템이다. 
우리 목에는 줄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자기가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한다.
마치 알아서 슬슬 기는 언론처럼.
누구도 이런 세상을 살아보지 못해서 끝을 모른다.
철학자들은 이런 세상을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할일이 많고 궁금한 것도 가득하다.

혁명은 실패한다.
프랑스 혁명이 패배한 후 사람들은 방황한다.
그때만 그런게 아니다.
소련이 변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쿠바가 망한 것은 감흥도 없었다.


<왜 혁명은 항상 실패할까? 꿈은 스스로 깨야 한다.
옆에서 흔들어 깨우면 의미가 없다>


자유를 갈구하던 시대.
파리혁명의 실패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말라 죽게 했다.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자신을 혹사한다.
건강이 악화돼 31살에 죽는다.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이 원인이었다. 

40년 동안 친구의 서랍에서 잠을 잔 미완성교향곡.
슈베르트는 성격이 둥글둥글 했다.
말도 없고 소심했다.
천성적으로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직장도 만들어줬다.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음악 모임.
친구들이 공연도 열어주고 돈도 벌어준다.
답례로 음악을 만든다.
재능있는 사람이 성격도 좋으면 이렇게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슈베르트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렇다.
모르는게 약이다. 
모르는게 자유다.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은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무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완성 교향곡을 들어보자.
죽었는데 살아있는 듯.
음침함을 자연스럽게 밝은 분위기로 바꾼다.
심지어 급속하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음악적으로 미완성 교향곡은 음정과 장단조가 엉망이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남았다.


<희한하다. 말도 안되고 뻔뻔한 작곡.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음도 안맞고 장단조도 들락날락한다.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다.>


평론가들은 슈베르트가 고집과 욕심이 없는 '무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미완성 교향곡의 시작은 말도 안되는 장단조의 결합이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다.
터무니 없는 음악을 뻔뻔하게 잘 만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슈베르트는 평생 "되는게 하나도 없네"라고 탄식했다.
슬픈 노래를 만들면 사랑 노래가 됐다.
사랑 노래 만들면 슬픈 노래로 들렸다.
원하는 데로 되는게 없었다.

슈베르트는 고독해서 친구를 찾았다. 
원래 고독한 사람이다.
베토벤은 운명이 고독한 사람이다.
누구와도 어울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베토벤은 그래서 자유를 갈구했다.
슈베르트는 자유로워서 고독을 갈구했다. 

혁명도 실패하고 자유도 잃고.
정말 되는게 하나도 없는 슈베르트.
그래도 자유를 맘껏 누리다 떠났다.
자유로워서 고독한 건가.
고독해서 자유로운 건가.

 
<굳이 억지로 고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에 수록된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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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⑨이번 봄은 짧네
 
봄은 늦게 온다.
가을은 빨리 온다.
봄은 시속 7km로 올라온다.
가을은 시속 40km로 내려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천천히 준다.
이별은 빨리 스쳐간다.
감정을 여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잊는 것은 빛의 속도다.
태어나는 것은 오랜 시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
이번 봄은 유난히 빨리 온다고 한다.
생각할 일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가.

피노키오라는 노래가 있다.
샹송과 동요.
피노키오는 가을의 노래다.

둘다 슬픈 노래다.
자꾸 부서지는 피노키오.
가을님에게 부탁한다.
더이상 사라지기 싫다고.
잊혀지기 싫다는 의미인데 소심해서 돌려말한다.


<멜로디와 다르게 슬픈 노래다>
 
매일같이 놀기만 하는 피노키오.
난 학원도 가기 싫다.
공부도 하기 싫다.
엄마는 잔소리만 한다.
놀고만 싶은데 어른들은 자꾸 간섭한다.
궁금하다.
피노키오는 어떻게 걱정없이 놀기만 잘하는지.
엄마 꿈 속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 줄 수 없겠니.
나도 좀 같이 밤새 놀아보게.
꼭두각시 인형인 줄 알았더니.
피노키오 난 너가 참 좋구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을 가야만 하는 나라. 크게 잘못
됐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은 교육에 관심이 없나보다>


화장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떠난다.
짦은 시간이지만 피노키오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수다를 떤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그분들은 부서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침묵했다.
누군가는 조용히 떠난다.
떠나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떠난 것은 언제나 그립다.
설렘보다 그리움이 크면 부서진다는 뜻이다.
마음이.

 
<요즘엔 샹송이 안들립니다. 초등학교때 들었던 곡들
말고는 아는 것도 없네요. 살면서 샹송을 들어봤으니
그나마 행운아입니다.>


사랑은 봄비처럼 마음을 적신다.
이별은 가을비처럼 차갑다.
봄인데 가을비처럼 왜이리 눅눅할까.
만남이 빠르다.
이별은 더 빠르다.
요즘엔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는데.
사람 사이도 휙휙 지나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름처럼 뜨거운 것도 아니다.
겨울처럼 고독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이 뜨뜻미지근한 것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사람에 상처를 받으면 사람으로 잊혀진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게 힘들면 이 방법이 있다. 모두를 사랑할 것. 그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묵자>


난 마흔이다.
불혹이라 철이 들어서인지 세상에 혹하지 않는 것 같다.
오십이 넘으면 봄꽃을 볼때 눈물이 난다고 한다.
생명은 계속 피어나는데 사람은 점점 닳아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해지고 유순해진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을 추억한다고 한다.
자기도 이제 사라질 길목에 서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면 가을엔 대참사인가.
그 불안함과 공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Dear 가을님.
전 가을님이 싫어요.
더 부서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Yours sincerely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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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⑧보스와 리더의 차이
 
보스는 장(長)이다.
리더는 선구자다.
'장'은 자리를 의미한다.
선구자는 지도자를 뜻한다.
보스는 사람을 관리한다.
리더는 일을 관리한다.
보스는 손에 먼지가 쌓인다.
리더는 흙을 손에 묻힌다.
보스는 앞서간다.
연봉이 높다.
리더는 뒤에서 밀어준다.
연봉은 따라온다.



각 나라별로 유명한 조정경기가 있다. 
영국의 캠브리지-옥스포드.
미국의 하바드-예일.
한국의 연세대-고려대.
조정경기는 어떻게 해야 이길까?
한명은 1분에 55번 젓는다.
다른 사람은 48번 젓는다.
또 누군가는 59번을 젓는다.
보스는 59번 노를 젓는 사람에 맞춘다.
리더는 48번에 맞춘다.
48번 젓는 팀이 이긴다.
많이 젓는 것보다 정확히 같이 젓는게 우승의 비결이다.
물론 리더는 조타수가 아니라 제일 뒤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다.



일본은 독특한 대회가 있다. 
매년 5000명씩 모여서 합창대회를 연다.
심지어 자기 돈을 내고 지원한다.
선착순이라 늦으면 참석을 못한다.
5000명이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연습할때는 화장실을 가면 안된다.
5000명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악보도 못본다.
외어야 한다.
5000명이 연습을 마칠 때마다 그 자리에는 부스러기 하나 없다.
물론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인 곳.
나머지는 리더의 몫이다.



몸소 가르치는 것.
조정과 합창.
이들은 조정선수 뺨친다.
음악가들 집에 보낼 정도 실력이다.

보스는 사람을 관리한다.
리더는 일을 관리한다.
그래서 리더는 다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몸소 해야 한다.
미래는 빛난다.


<5천명에서 1만명으로 업그레이드. 사람이 많이 모이니
무섭긴 합니다. 북한의 아리랑 공연과 다른 점. 자율이냐
타율이냐. 자유로운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환희의 송가 주제입니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회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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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⑦무지개 좇는 소년
 
무지개 좇는 소년.
아름답습니다. 
꿈이 많고 소박한 것은 부러운 것입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꿈과 낭만은 더 소중합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더 좋겠지만요.
무지개를 좇는 것 자체만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지개는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좇는 것입니다.
몽상이 아닌 '환상'이라는 단어가 무지개에 어울립니다.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체 게바라의 좌우명입니다.


<체 게바라는 CIA에 체포돼 죽기
전 카스트로에게 SOS를 칩니다.
카스트로는 모른척 합니다. 사람
속마음은 알 수 없죠>


체 게바라는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체 게바라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죠.
그가 한 말은 꿈과 현실은 같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달에 갈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스마트폰은요?
그녀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나폴레옹 말처럼 불가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앞세워 핑계를 대는 것이죠.

?

그대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현실은 어떤 모습입니까?
두개가 일치됩니까?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옵니다.
꿈꾸는 것은 나의 리얼리티죠.
'바라봄의 법칙'.
바라보고 간절하면 반드시 이뤄지게 됩니다.


<Dreams are my reality. 오늘의 명언>

'누가 달에 갈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젊음은 좋은 것입니다. 
꿈을 꿀 수 있어서죠.
100세 시대는 그래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보십시오.
모차르트, 멘델스존, 슈베르트.
모두 30대에 사망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시신이 없습니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탓에 사라졌습니다.
베토벤의 시신은 해부가 됐습니다 .
둘다 가묘입니다. 
저도 마흔입니다.
꿈 꿀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무지개를 좇는 소년.
대표적으로 슈베르트가 있습니다 .
그의 별명은 '악성(樂聖)을 꿈꾸는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버는 속물'도 희망했습니다. 

당시에 '로시니'라는 음악가가 있었는데 오페라로 부자가 됐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로맨틱한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우물쭈물 하다 다 놓쳤습니다.
사랑을 꿈꿨지만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베토벤 처럼 유명한 음악가가 되려다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로시니 처럼 오페라로 대박을 꿈꿨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슈베르트의 오페라는 수십곡이지만 단 한곡도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괴테가 쓴 시에 슈베르크가 작곡한 '마왕'. 기억나십니까?
무지개를 좇던 그대도 어렸을 적 마왕을 봤습니다. 이상하죠?
크면서 점점 마왕을 닮아가는 우리>


슈베르트는 성격도 독특합니다.
음악가들이 보통 독립적이고 고집이 셉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입니다.
하다 말고 안하다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성격이죠.
사랑도 우물쭈물 하다가 놓쳤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묘는 나란히 있습니다.
이 중 슈베르트 시신만 온전합니다.
삶이 별다른 특색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죠.
어쨌거나 무지개를 좇던 남자 슈베르트.
그래도 영감이 뛰어나서 남겨놓은 가곡이 유명합니다.

꿈은 이루어지라고 있는 것이죠.
무지개를 좇으세요.
그래도 꿈만 꾸다 가지말고 현실로 이루세요.
무지개를 좇는 사람은 몽상가가 아닌 리얼리스트입니다.

달을 보고 연주를 하는 음악가들.
누가 달에 갈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달을 보며 연주를 들려주는 연인들.
그녀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사랑의 세레나데를 만든 슈베르트. 사랑 고백도 못하고
떠난 젊은 음악가. 고백하려거든 망설이지 마세요. 젊음도
생각보다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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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⑥아직 할일이 남은 그대에게


"나는 내 할일을 다 마쳤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죽기전 "I have done my work"라고 말했죠.
자신있게 '인간의 고민을 해결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했죠.
허나 여전히 숙제는 많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행복을 온도계처럼 측정하는 법을 연구중이죠.

비트겐슈타인은 죽기전에 의사선생님에게 "저 인생을 아주 잘 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언어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전히 철학이 풀어야 할 문제는 많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히틀러와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와 윤리는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글쓰기는 인류공동작업입니다.
전 시대 사람들이 남겨놓은 생각을 이어달리기 처럼 하는 것이죠.
그들의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짓'을 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짓'은 고생이죠.
삶에서 어려운 문제를 그들이 풀어놓으면 그 다음부터 '모방과 창조'가 일어나는 것이죠.
글쓰기만 그렇겠습니까?
사람의 모든 일이 같습니다. 

삶은 미완성입니다.
"난 다 완성했다"
이 말은 "대충 이 정도하고 놀자"라는 의미입니다.
노는 것은 좋습니다.
단지 완성된 것은 없다라는 것이죠.
인생은 언제나 미완성.
그렇게 계속 후대로 이어지는 것이죠.
육신을 사라지지만 생각은 남습니다.
생각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한사람이 영원히 산다는 것과 같은 것이죠.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투쟁.
희망.
의심.
승리.
이렇습니다.
베토벤은 '운명'을 4악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NHK 방송에서 수십년동안 연주된 운명을 분석했습니다.
단 한곡도 같지가 않았습니다.
운명은 8개음으로만 구성됐습니다. 
완벽하게 만든 곡이라서 단 한개의 음만 틀려도 알아챕니다.
연주할때 마다 다른 곡으로 들린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입니다.

같은 고향.
같은 직업.
같은 생각.
같은 민족.
같은 성별.
같은 얼굴을 하더라도 다 다른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한명의 인간은 하나의 우주입니다.
학살자는 5000명을 죽입니다.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1명이 5000번 죽은 비극입니다. 

할건 많은데 시간이 없네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우크라이나 출신 페트리샥 아나
스타샤 연주>


슈베르트는 남들보다 반도 못살았습니다. 
998곡의 가곡을 만든 왕입니다.
정작 본업은 따로 있었다고 하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차이콥스키의 비창과 함께 3대 교향곡입니다.
슈베르트 교향곡은 4악장 중 2악장만 작곡을 했습니다. 
건망증도 심했지만 성격이 난잡해서 여기저기 곡을 만들어 놓다가 사망한 것이죠.
미완성 곡은 5개나 있습니다. 


<오직 영감만으로 음악을 만든 
슈베르트. 누구나 영감이 떠오른다.
기록을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한다>


슈베르트는 오로지 영감으로만 곡을 만들었습니다. 
헨델은 '메시아'를 영감으로 쓰고 신에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오 신이시여. 이게 정말 제가 만든 노래입니까?"
슈베르트는 잘때도 안경을 쓰고 잤습니다.
악상이 지나갈때 빨리 잡아야 했기 때문이죠.
사람과 얘기를 할때도 산책을 할때도 잠을 잘때도.
악상이 줄곧 떠올라서 여기저기 기록을 했습니다.
기록의 힘이죠.


<헨델 메시아의 '할렐루야'. 오라토리오입니다.
오라토리오는 대부분 종교적 색채가 강합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뛰어넘기 위해 살았습니다.
실제 베토벤은 1827년에 사망합니다.
슈베르트는 그 다음해 죽습니다.
1년 차이로 음악의 시대가 바뀝니다. 
베토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음악가죠.
베토벤은 교향곡의 왕,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 됩니다.

베토벤 때문에 망했다

20세기는 베토벤의 시대입니다. 
그 어떤 음악가도 베토벤을 넘지 못했습니다.
브람스는 40살이 넘도록 교향곡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베토벤과 똑같기 때문이었죠.
어느날 1번 교향곡을 발표한 브람스.
스승은 "어? 이거 베토벤 교향곡 10번인데?"
베토벤을 벗어나려고 했던 브람스.
결국 그렇게 미완성으로 사라집니다. 
그래도 브람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열었습니다.


<뭘 만들어도 베토벤과 똑같았다. 20세기 작곡가들은 "
베토벤이 다 해먹었다"라고 칭얼댔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여러분.
인생은 원래 미완성입니다. 
그러니 자질구레한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완성이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할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대의 미완성 작품.
누군가가 이어달리기를 할 것입니다.
그럼 언제 어디서든 그대는 부활합니다.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미완성 인생.
할일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즐거운 것입니다.

아직 할일이 남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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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⑤난 저런 사람이 되지 않을테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래서 삶은 시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노력을 멈추면 결과는 없다.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엉뚱한 결실이라도 맺게 된다. 
간혹 자신의 꿈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꿈은 멘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하는 경우도 있다.
긍정보다 부정의 힘이 강한 경우다.
실제 부정은 긍정보다 힘이 강하다.
사랑보다 배신감의 힘이 더 크듯.

베토벤은 20대에 귀가 안들렸다.
매일 같이 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베토벤이 모차르트처럼 되기를 바란게 아니다.
자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기를 바랐다.
베토벤은 평생을 '아버지 처럼 되지 않아야 겠다'를 꿈꿨다.


<베토벤 월광소나타 1악장. 얼마나 우울하게 살았을지
느껴진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집안을 안돌보고 베토벤을 학대했다. 
그는 사기와 절도 등 사회 부적응자들이 저지르는 비행을 다 일으켰다.
그는 기소와 구속을 피했다. 
베토벤 할아버지가 이뤄 놓은 공적 덕분이다.
그 지역의 영주가 죄를 봐줬다.
한번은 베토벤 아버지가 죽은 귀족을 이용해 사기를 쳤다.
유산을 자기에게 상속한다고 유언장을 조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베토벤은 그 지역에서 살 수 없게 된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 최악으로 치닫는 베토벤.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음악적 재능이 훌륭했다. 
주위 사람들은 베토벤 아버지를 그의 아버지와 비교했다. 
술독에 빠진 열등감.
그런 이유 때문에 베토벤은 매일 같이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다.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넘어온 집안이다. 
빵집을 하면서 부업으로 포도주가게를 했는데 대박이 났다.
베토벤의 할머니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베토벤의 아버지를 그의 아버지와 비교했다.
베토벤 할머니에서 시작된 알코올 중독이 베토벤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베토벤 '정적(Silence)'.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베토멘은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이라는 별명이 있다.
베토벤의 트라우마는 모차르트다.
베토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성공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랐다.
사실 모차르트 아버지도 모차르트를 이용해 돈을 많이 벌었다.
이런 이유로 베토벤 아버지는 베토벤의 출생신고를 2년 늦춘다. 
모차르트보다 더 신동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마흔이 넘어서 자기 나이를 알게 된다.
실망감.
좌절.
아버지의 못난 일을 알게된 씁쓸함.

소년 소녀 가장이 된 베토벤은 두동생을 책임진다.
훗날 '칼'이라는 조카에게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와 닮아가면서 똑같이 학대를 하게 된다.

닮고 싶지 않으면서도 똑같아 지는 현상.
이는 베토벤이 죽기 위해 쓴 젊은 날의 유서에 드러난다.

"난 음악밖에 모른다. 배운게 그것밖에 없다. 할 수 있는게 없다.
나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아버지와 다르게.
난 아버지와 다르고 싶었다. 너희들이라도 잘 살아라"



<베토벤의 마지막 노래 '환희의 송가'. 운명에 짓눌렸지만
이를 극복한 느낌이다. 누군가는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의 노래'라고 한다.>


어쨌건 죽지는 못했다. 
그가 만든 '운명'
운명의 원래 제목은 교향곡 제5번 C단조 심포니다.
운명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번역을 해오면서 우리가 붙인 것이다.
원래 운명이라는 제목은 없다.
베토벤이 서신을 자주 교류하던 쉰들러라는 사람에게 이 노래를 들려줬다.
베토벤은 "나의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한 것을 쉰들러가 진술한다.

꿈과 인생.
그것은 나의 것인가 타인의 것인가.
간혹 자신의 꿈을 남을 통해 꾸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에는 비극이 된다. 
자신의 꿈은 자기가 꿔야 한다.

오롯이 나의 꿈이란 없다.
사람은 태어나서 머릿속이 도화지처럼 하얗다.
살면서 무엇을 만지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것을 보고 생각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 "왜 이길을 택했냐?"라고 묻는다면 "좋아서"라고 답한다.
정답이다.
그곳에 태어나서 길들여져서 "좋아진 것"이다.
쌍둥이가 서로 다른 나라에 입양이 된 경우.
둘은 서로 다른 생을 살고 다른 꿈을 꾼다.
의도치 않았지만 환경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일종의 실험이다.
입양이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간혹 사람들은 "내가 다른 나라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성별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 저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라고 의아해 한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
그대도 그렇게 태어났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의 욕망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꾸는 꿈과 삶은 누군가의 것들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운명인 것이다.
철학자 라캉의 말처럼.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운명이 있다면 신도 존재한다.
신은 없다. 그래서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어쩌면 '경우의
수'를 운명탓으로 돌리는 것 아닐까>


모든 것에는 필연이 없다. 
우연이 부딪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 부딪히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충돌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물론 결과는 모른다.
두개의 세계가 충돌한다는 것과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운명은 없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나온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철학자 들뢰즈의 말처럼.
 
고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래서 삶은 시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노력을 멈추면 결과는 없다.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엉뚱한 결실이라도 맺게 된다. 
간혹 자신의 꿈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운명은 없다.
그러나 운명은 탄생한다.
불현듯 이런 소리로 문을 두드린다.



<최악의 상황을 뚫고 스스로 삶을 개척한 사람은 베토벤이 유일하다.
그래서 악성(樂聖) 베토벤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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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④자식을 영재로 키우고 싶으십니까?
 
영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수재 혹은 영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재는 태어나는 것일까요?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둘다 맞습니다.

우리는 영재 혹은 천재라고 하면 수학이나 과학을 떠올립니다.
수학과 과학은 인간의 8가지 능력 중에 하나입니다.
결과와 점수, 대학서열 중심으로 교육을 하다보니 국영수가 전부인 것처럼 알고 있었던 것이죠.
국영수를 잘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고작 3가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교육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잘못 접근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지능은 선천적인 것.
재능은 후천적인 것입니다.
누구나 선천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나 노력하면 후천적으로 재능이 커집니다.
자신의 능력을 빨리 찾고 천천히 키우는 것.
그게 교육의 목적이겠죠?


<솔직히 무슨 프로그램인지 모르겠습니다. MBC영재
발굴단은 재밌습니다. 다만 영재들이 SKY에 목을 맬
운명을 피할 수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한국사람은 유능합니다.
하지만 교육제도가 잘못되서 빛이 바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공부나 운동, 음악, 미술.
모두 해외로 나가야만 성공하는 현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모습.
우리가 하면 안될까요?

모차르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재주를 내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큰 것은 아니겠죠?
온가족이 음악가였던 것도 천운이었습니다.
지능과 재능이 결부된 아주 탁월한 삶입니다.
모차르트는 626곡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곡이 장송곡(레퀴엠)인데 부탁을 받아 작곡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이 곡은 결국 모차르트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연주됩니다. 



역사상 가장 머리가 좋다고 알려진 사람.
존 스튜어트 밀입니다.
당시는 IQ테스트가 없었습니다.
현대 학자들이 '대략 199정도 되겠다'라고 추측합니다.
그는 '자유론'을 썼습니다.
밀은 모든 학문에 통달했습니다.
그는 천재가 아닙니다.
노력으로 위인이 됐죠.
바로 글쓰기 입니다.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신문 기고로 9남매를 먹여살렸습니다.
아버지 밀은 아들 밀에게 8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들 밀은 자기가 한번 아버지 한테 배우고 그것을 복습했습니다.
그리고 8명에게 똑같이 8번을 쓰면서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최고의 배움이죠.


<똑똑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연봉? 판사봉?
명문대 타이틀? 정직한 것?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식견?>


지능과 재능은 공간능력도 의미합니다.
루마니아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요. 
직접 화면으로 확인해보시죠.



에디슨과 뉴턴.
어렸을 적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준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결국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면 누구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능이 높으면 좋습니다. 
높지 않다면 재능을 발전시키면 됩니다.
지능이 아무리 높아야 대부분 150이하입니다.
140이상도 딱히 많지 않습니다.
150이라고 해봐야 286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못따라갑니다.
심지어 단기기억력으로 보면 인간은 침팬지를 따라가지도 못합니다.



모차르트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재능으로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능이 아니라 꿈과 희망.
그리고 '열망'이라는 기름이 필요할 뿐이죠.
열망의 다른 말은 '사랑'입니다.
그대는 무엇을 사랑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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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③유체이탈
 
혼이 몸안에서 빠져나가는 현상.
유체이탈.
과학적으로 유체이탈은 불가능합니다.
영혼은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미세하게 몸무게가 줄어드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에너지가 급속히 소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입니다.

유체이탈은 달마대사가 유명합니다.
달마의 혼이 빠져나와 세상을 구경하고 있던 중.
다른 혼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사라졌다고 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얼굴을 한 사람 속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육신은 사라지는데 정신은 영원한 것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죠.


<달마대사는 처음부터 추남이 아니었다>

거울에 보이는 건 내가 아니다

영혼과 유체이탈.
이것은 자기자신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네 자신을 알라'
우리는 우리 몸밖을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방법이 있죠.
바로 예술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쉘 프루스트의 말.

"인간은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자신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음악을 연주해보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감정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
그 사람이 본 것을 같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유체이탈은 상상속의 말이지만 실제 구현은 가능한 것이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본다면 잘생긴 얼굴에 반해 '자기애'로 빠집니다.
예술을 통해 자신 몸밖으로 나온다면 자신의 내면이 보입니다.

예술은 내면을 드러내고 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격'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기 때문이죠.
강북, 강남은 장소일 뿐 예술은 자유롭게 흘러다닙니다. 


<독특하고 기괴해야 한다. 그래서 '다르다'. 세상엔 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 다르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


감정은 누구나 똑같다

연극무대는 대학로에서 많이 열립니다.
거리가 지저분하고 술집이 많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나 뮤지컬은 뮤지컬이고 오페라는 오페라입니다.

예술은 '난 다른 사람이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난 우월한 사람이야'를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우월과 열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가난한 대학생들의 연애코스.
뮤지컬은 중산층이 북적이는 대중공연.
오페라는 와이너리를 즐길 수 있는 부자들의 교양.
모두 다 틀린 말입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모두 다 같은 말입니다.
보고 있으면 똑같이 잠이 옵니다.
그리고 유체이탈도 경험할 수 있죠.

인간의 절대감정만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오라토리오를 추천합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처럼 무대장치가 없이 순수음악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감정 있는 그대로만 느끼는 것이죠.
즐기세요.
언제 어디서나 유체이탈을.



<사계, 천지창조처럼 무대장치 없이 음악으로 이야기 하는 오라토리오. 비발디
의 사계 중 '겨울'. 클라라 주미강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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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②대영제국에 없는 단 하나
 
영국은 세계를 재패했다.
땅 크기도 한국만 한다.
해양세력의 주역인 대영제국.
지금은 미국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영국은 철학이 꽃 피우고 학문이 발달한다.
권리장전을 시작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유명한 경제학자 10명 8명은 영국 출신이다.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
학문과 사상이 융성한 국가.
전세계 정치 망명인은 영국에서 꿈을 이뤘다.

영국엔 없는게 하나 있다. 
음악가가 없다.
서양에서 음악의 전성기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다.
영국은 내세울 만한 음악가가 없다.

헨델은 영국에 귀화한 사람이다. 
바흐와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산 '음악의 어머니'
대식가인 헨델은 평소에도 7~8인분을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예와 부를 위해 헨델은 영국으로 삶을 옮긴다. 

영어로 쓰고 불어로 노래부르다

영국 출신 중 클래식을 대표하는 사람은 '엘가'가 유일하다.
사랑의 인사.
이 노래는 프랑스어 제목을 달고 발표된다. 
프랑스어로 인식돼어야만 겨우 유명세를 탔던 시대다. 
그만큼 영국은 예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부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만든 노래 '사랑의 인사'. 엘가>

영국의 음악은 대중문화 시대에 꽃피운다. 
60년대 미국 팝음악이 전세계에 퍼진다. 
이에 질세라 'English invasion'.
영국의 팝 '음악 공습'이 시작된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퀸, 엘튼 존, 조지 마이클 등.

세계는 동양의 시각보다 서양의 시각으로 보곤 한다. 
서양이 우세해서가 아니다.
역사는 정-반-합으로 쇠락과 번영을 반복한다.
대륙세력인 중국은 해양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는 서양의 아편 때문에 무너진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은 아편전쟁 이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2차전을 벌이고 있다. 



바람에 새긴 문명 '인디언'

서양의 세계사는 영국, 독일, 프랑스.
동양은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왜 그럴까?
과거에도 찬란한 문화는 전세계에 있었다.
그러나 영, 독, 프, 중국을 제외한 역사는 모두 뒷전으로 밀린다.
그것은 '기록' 때문이다.

로마는 기록이 없다.
땅을 파면 가끔 유적지가 나올 뿐이다. 
인디언은 바람에 문명을 새겼다. 
마야도 마찬가지다. 
이집트는 벽화에 불과하다.
한국의 시후천황, 요하문명, 고조선도 기록이 없다.
세계사는 기록의 힘으로 전개된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 
한 예로 남미의 고대는 '정신'의 문명이다. 
그 역사는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영국은 유명한 음악가가 없다.
하지만 기록의 문화가 발달했다.
그로 인해 모든 학문과 역사가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훗날 '영국 팝의 공습'도 세계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기록은 '정신'이다.
삶이다.
역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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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①집에 가고 싶어요
 
클래식은 3명의 음악가로 압축됩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낭만주의 음악은 클래식으로 진화합니다. 
클래식은 이후 바로크 음악으로 발전합니다.

클래식을 상징하는 음악가는 하이든입니다.
하이든에서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시대.
바로 클래식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하이든은 교향곡을 100여편 넘게 만들었습니다.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죠.


<하이든>

장수왕 하이든

하이든은 77세까지 살았습니다. 
당시 평균수명이 조선시대처럼 40세였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140살까지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모차르트가 35세에 생을 마감한 것을 본다면 이례적으로 오래 산 사람입니다. 
마치 조선의 영조가 장수했듯이요.

하이든은 가난한 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키웠습니다. 
하이든이 어린 모차르트를 만났을 때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 음악가"라고 칭찬했습니다. 
하이든을 만난 모차르트는 음악신동으로 거듭납니다.


<어린 모차르트. 클래식의 시대는 하이든에서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진다>


하이든은 어려서 소년합창단원이었습니다.
변성기가 오기 전 소년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
당시에는 목소리가 좋은 소년들의 경우 거세를 해 음악가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성이 음악을 할 수 없던 시절이라 거세한 소년이 성장해 여성의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이죠.
하이든의 아버지는 고민했습니다. 
당시 그 직업은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었죠.
하이든의 아버지는 그럼에도 이를 포기하고 아들을 작곡가의 길로 인도합니다.


<여성은 음악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내는
남성. 영화 '파리넬리'>


집에 가고 싶어요

하이든은 결혼 복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인의 성격은 매우 악질이었죠.
가난한 음악가인 남편에 매우 화가난 부인.
결국 눈치가 보여 한 음악원의 단장이 됩니다. 
그안에서 하이든은 많은 교향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악처 덕분에 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걷거나 말, 마차를 탑니다.
음악단원들은 50km가 넘는 곳에 모여 연주를 했습니다.
당시 50km면 몇일밤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숙식을 하며 일을 했죠.
하루는 학 음악단원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하이든은 고민했습니다. 
집에 보내면 상관이 열을 낼 것이고 집에 보내지 않자니 단원들이 지치기 때문입니다.
하이든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휴식이 필요하다. 휴가를 주자"
하지만 음악단을 이끄는 주인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이든은 이를 교향곡으로 표현합니다.
바로 '고별'이라는 음악입니다.
웅장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고별'.
자기 파트 연주가 끝나면 한명씩 한명씩 악기를 들고 집에 갑니다. 
수십명의 연주자 중 마지막에는 제1, 2 바이올리니스트만 남습니다. 
둘도 결국 집에 갑니다. 
연주자만 남죠.
음악단을 이끄는 주인은 무릎을 탁 치며 휴가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일 끝나면 가족과 함께. 119. 회식은 1차에서 9시까지만.
결제는 법인카드로.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여러분 일이 끝나면 집에 갑시다. 
오랫동안 일하면 휴가도 즐깁시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놀기도 잘하죠.

인간은 놀기 위해 일을 합니다.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리 해놓고 놀기 위해서 입니다. 
사냥도 곡식도 저장을 해놓는 이유.
매일 먹을 거리를 찾으러 다니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일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일은 놀이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야 합니다. 
일이 재미가 없으십니까?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그러면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됩니다.
그리고 미리 많이 해놓고 휴식을 즐기세요.
일(놀이)을 열심히 하는 것은 미리 해놓고 신나게 놀기 위한 것입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밥만 먹고는 못삽니다.
밥벌이를 하는 것은 '밥벌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밥벌이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죽어라 '밥을 벌어야 하는 것'이죠.
밥벌이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은 밥벌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
  • 박민호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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