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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배 이야기)환율보다 무서운 은행 ‘꺾기’…중견·중소 조선업계 몰락 유발

(8) 조선영업 (바)

2019-02-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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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건조 원가를 계산할 때 이자율의 변화와 환율의 움직임은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특히, 환율의 미묘한 변동이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원가 계산을 하는 시기와 선주의 분할납부금이 지불되는 시점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에 환율의 움직임은 조선소의 경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달러화의 가치가 높아지면 원화로 환전하여 지불되는 조선소는 수익이 늘어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손실을 보게 된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선소는 ‘환율연계 매매’(Exchange Rate Hedging)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은 일방적으로 강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달러화의 강세에 대비하여 환율연계 매매에 합의하여 놓았다면 환율이 예상 외로 약해지는 경우에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 속에서 한국의 군소 조선소들이 도산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환율연계 매매에 연계됭 파생된 금융상품인 ‘키코(KIKO·Knock In Knock Out)’로 인하여 입은 금융 손실이었다. 원화 환율이 강세로 전환될 경우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로 생각해 가입했던 키코 시스템이 예상하였던 것과 다르게 환율이 큰 폭의 약세로 돌아서면서 판매절하 효과를 주어 속수무책으로 파산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오히려 환율 변동의 위험요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KIKO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2015년 5월22일 오후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육상에서 건조한 200번째 선박을 바다로 보내는 ‘로드아웃(Load-Out)’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성동조선해양
 
키코 피해를 입은 중견·중소 조선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성동조선해양이다. 성동조선해양은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조선업 호황에 맞춰 다량의 선박을 수주했고, 환 헤지 상품에 상당액을 가입했다. 또한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대규모 시설투자도 병행했다. 앞다퉈 자금을 빌려주던 은행이 한 가지 꼼수를 썼다. 소위 ‘꺾기’라는 자금을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은행의 금융상품을 끼워파는 방식을 내세운 것이다. 투자금이 아쉬웠던 성동조선해양으로서는 은행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고, 환율 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키코에 가입했다.
 
하지만 2008년 환율이 계약서상의 금액 이상까지 치솟자 약정금액의 2배 이상을 팔아야 한다는 옵션에 따라 중소기업들은 거액의 손해를 물어내야 했고, 우량 중소기업들이 환차손으로 흑자도산에까지 이르렀다. 성동조선해양도 그래서 물어야 할 액수가 8000억원까지 치솟으며 결국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갔다. 2010년대 초반 성동조선해양 경영정상화를 위한 채권단 자율협약 체결 참여를 거부한 국민은행에게만 최대 2400억원이 넘는 돈을 물렸는데, 문제는 당시 국민은행이 성동조선해양에 70억원을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키코 가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피해액의 3% 밖에 안됐다.
 
키코 피해가 발생했어도 성동조선해양은 국민은행 등에 피해보상 요구 등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4월 자율경영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이자비용과 수수료를 모두 감내해야 했다. 금융권에 잘못 보였다가는 대출길이 막혀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을 정도로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키코 피해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은행들로부터 소 취하를 안하면 대출이 안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는 중소기업들도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는 선심쓰듯 상품을 팔았다가도, 정작 회사가 필요로 할 땐 발을 빼는 금융기관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은행은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며 도덕적 책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5년 5월22일 오후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육상 건조한 200번째 선박이 플로팅 도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성동조선해양
 
한편, 조선소는 원가 산정 과정에서 선주가 빠른 납기를 원하는지 또는 늦은 잡기를 원하는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시황의 변화에 따라 선주가 보유하고 있는 선박들을 급속히 교체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계약 당시의 선가를 고정시켜 놓고 납기는 가능한 한 늦게 잡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소는 도크 또는 선대 운영 계획에 따라 빠른 납기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 때는 기존선의 도크 또는 선대 사용 시기와 대체하거나 계획된 도크 또는 선대 사용 계획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할 수 있다. 납기는 원가를 계산할 때 관리비, 건조자금 이자, 생산 공수 책정, 적용환율 및 물가 상승의 고려 여부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자료: ‘조선기술’, 대한조선학회,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 채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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