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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미일 반도체 마찰과 미중 통상분쟁의 차이는?

코트라 무역관이 본 ‘기술전쟁’ 2제 (상)

2018-1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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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전쟁은 다른 말로는 ‘통상분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간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각국은 직·간접적인 통상규제를 활용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규제를 활용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통상분쟁은 특히 미래를 책임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첨단산업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코트라 일본 도쿄 무역관과 오사카 무역관은 최근 두 건의 보고서를 통해 기술전쟁의 치열한 내막을 소개했다. 두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했다.
 
1위 자리 지키려는 미국의 보복
 
도쿄 무역관은 ‘미일 반도체마찰부터 미중 통상분쟁까지, 기술전쟁의 미래는?’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통상 분쟁을 분석했다.
 
2차 산업 혁명으로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뒤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공업대국으로 성장했다.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군수 경기와 제2차 세계 대전(1945년)을 겪으면서 유럽 국가들과 소련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레 미국이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전후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오일 쇼크를 극복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범국가적인 지원과 기업들의 참여로 반도체 종주국 미국을 추월하며 1980년대 들어 세계 최대 반도체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보복은 1983년부터 본격화 됐다. 이 시기에 미쓰비시전기,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업체가 압도적인 성장세로 미국의 반도체 기업을 위협하자 당시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미 상무부에 일본 덤핑 문제 조사를 명령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반짝 수요가 끝나자 미국 반도체 시장은 대 불황으로 전락했고, 시장의 급변은 열세였던 미국 반도체 업체에 큰 타격을 입혔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같은 해 대규모 직원을 해고했고, 인텔과 내셔널세미컨덕터(NS), 모토롤라 등도 공장 가동시간을 단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예민했던 미일 반도체 마찰은 더욱 과열됐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985년 일본 반도체 업체 7개사가 부당하게 D램을 판매하고 있다는 덤핑 소송을 제기했고,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와 NS도 또 다른 덤핑 소송을 진행했다. 이러한 줄 소송은 1985년 플라자 합의(프랑스·독일·일본·미국·영국으로 구성된 G5의 재무장관들이 외환시장의 개입으로 인하여 발생한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결의한 조치),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체결로 이어져 미국이 일본에 미국산 반도체 수입 촉진을 강요하는 것이 허용됐다.
 
세계 반도체 업체 순위 추이(1987~1993년) 자료/코트라 도쿄 무역관
 
‘반도체 협정’ 체결 효과 없어
 
미일 반도체 협정에 따라 양국간 통상 마찰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미국은 다시 일본의 제3국 시장에서의 덤핑을 이유로 1987년 추가 보복 조치를 발표, 미일은 전후 최대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일본이 반도체 협정을 위반한 것에 대해 손해 배상액으로 3억달러를 상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일제 컴퓨터나 TV, 전동 공구에 대해 이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100%의 보복 관세를 발표했다. 미 국방부도 후지츠의 페어차일드 인수를 저지하는 등 일본 기업에 대한 보복을 이어갔다.
 
미국의 엄청난 압박에 일본 반도체 업게는 제조 기술 향상으로 대응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 대기업 30개사의 매출액은 4조엔으로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며 반도체 마찰이 일어나기 전에 비해 2배로 확대됐다. 미일 반도체 협정이 오히려 약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반면, 일본 반도체 산업 약화에 성공하지 못한 미국은 새로운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다. 컴퓨터나 TV, 전동 공구에 대한 100 %의 보복 관세는 해제되었지만 일본 시장에서 외국 반도체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하는 구체적인 수치 목표가 설정됐다. 또한, 같은 시기에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일본 기업을 공격했다. 일본 반도체 업체가 미국에 지불한 특허료는 수천억엔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가까이 진행된 통상 마찰을 기술 혁신으로 버텨 나가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한계를 보이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이 기울어지면서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인 ‘잃어버린 10년’에 돌입했다.
 
경쟁상대가 없어지자 미국 기술업체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일 반도체 마찰 시작부터 10년이 경과한 1992년 개인컴퓨터(PC) 수요에 힘입어 인텔(Intel)이 성장했으며, 더불어 미국 반도체 업계가 회복경향을 보였다. 1993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 3.1(Windows3.1), 1995년에는 윈도우 95(Windows95)가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미국 기업이 전자 업계의 패권을 탈환했으며, 가전 및 오디오 장비에 강했던 일본 세력은 서서히 후퇴했다. D램에서는 한국의 삼성전자가 일본의 새로운 위협 대상으로 부상, 앞에서는 인텔, 뒤에서는 삼성이 위협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일본 기업들의 목을 더 세계 죄어 나갔다.
이러자 1994년 미국은 제2차 미일 반도체 협정(1991년 개정) 종료를 결정했으며, 미일 반도체 마찰은 시작된 지 13년 후인 1996년에 마침내 종결됐다.
 
미중 무역전쟁도 기술 전쟁으로 진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치킨싸움 이상으로 갈등을 보이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도 기술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최첨단 기술 제조 강국을 목표로 세운 국가 정책 ‘중국제조2025’를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2009년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중국의 제조업은 빠르게 성장한 반면, 반도체 기업은 세계 10위 안에 아직 한 회사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개발에서 한발 뒤쳐졌지만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인터넷 대기업에 의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미국을 따라 잡을 정도의 수준까지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한 중국은 이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진입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동운전, 얼굴인식에 의한 감시 카메라 시스템 등의 분야에서도 중국은 독자적인 진화를 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미 정부는 통상 규제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올해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ZTE에 전자 부품 판매 금지를 명령했으며, 9월에는 대중 무역 적자의 절반(약 2500억 달러) 가까이까지 관세 제재를 확대하는 등 중국 길들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3국 간 GDP 추이 및 전망. 자료/코트라 도쿄 무역관
 
미일·미중 기술 전쟁의 차이와 전망
 
과거 ‘미일 반도체 마찰’과 이번 ‘미중 무역전쟁 및 최첨단전쟁’을 비교해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미일 반도체 마찰은 일본이 미국을 넘어선 다음에 발생한 것에 비해, 미중 무역전쟁이 일어난 시점에서는 아직까지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 단계에서 대중국 반도체에 직접 규제를 가하지는 않고,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를 중국기업에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최첨단 산업의 근본적인 성장을 막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전자기기의 수출로 수익을 올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어 더 큰 이득은 미국이 얻고 있다. 그러나 이번 ‘중국제조 2025’에서는 반도체의 국산화를 향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는 바,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움직임이 진행될수록 미국의 보복조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기기 산업신문 상하이지사 K국장은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미일 반도체 마찰 당시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에 초점을 맞춰 보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중 양국에서 다양한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여 보복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반도체’가 특정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중 반도체에 관한 분쟁에 대해서는 아직 냉정하게 보고 있는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 대국의 정상을 다투는 나라끼리는 언젠가 충돌하고 경제적인 분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화해하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을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대응방식의 차이가 결과를 어떻게 좌지우지할지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나 관계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거 일본의 경험과 비추어보면 더 이상 장기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세계 경제 둔화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관은 현재 반도체를 포함한 최첨단 기술 산업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인 ‘미중 무역전쟁’, 중국 반도체 산업이 향후 몇 년에 걸쳐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은 틀림없는 만큼 그 때 미국을 비롯한 ‘반도체 선진국’이 어떤 조치를 취해 올 것인지 중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닛코어셋매니지먼트 M 담당자는 “중국의 반도체산업은 최첨단 기술면에서의 경쟁력 부족과 기술자 부족뿐만 아니라 해외기업 인수 시 각국 정부의 거부 가능성 등 과제도 많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요를 배경으로 신경제가 견인하는 질 높은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향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는 미일 반도체 마찰과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미중 무역전쟁,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각국의 경제상황과 외교 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먼저, 시기의 차이는 일본의 경우 무역마찰이 심각해진 이후에 보복이 시작된 것에 비해, 중국에 대한 제재는 기술력을 따라잡기도 전에 시작됐다. 중국의 가파른 최첨단 기술 성장세가 일조한 것으로 보이며, 미국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이러한 압력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응의 차이를 놓고 보면 최종적으로는 국력으로 승패가 나뉜 일본의 경우 오히려 미국의 압력으로 기술력 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면 똑같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는 등 일본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미국은 보복관세, 지식재산권, 매수방해, 수량규제, 환율조항 등 일본에 대응했던 것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관은 “반도체 선진국인 한국 역시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따라 그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면서 “통상 분쟁 동향을 참고해 반도체 산업 차원에서의 대응 및 향후 첨단기술 산업 패러다임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에서의 정책, 기업 차원에서의 전략 수립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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