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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국적선사 구조조정 꼬인 실타래 풀 해법은?

해운업계, 결정적 순간때마다 '진흙탕 싸움'

2018-03-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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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정부는 국적 해운사끼리 제로섬 게임(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그만큼 손해를 보는 상황)을 하도록 내몰았던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SM상선에 이전투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이 같이 말했다.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발표를 앞두고 현대상선과 SM상선의 갈등이 격화하자 내놓은 쓴소리다.
 
최근 몇 년간 국적 원양선사들이 기로에 설 때마다 진흙탕 싸움이 되풀이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해운업 구조조정 당시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가입 승인을 호소하고, 한진해운이 '침묵'으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게 대표적인 예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해운동맹 가입,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용선료(선박임대료) 인하를 조건부 자율협약의 요건으로 제시했다. 산업적 관점을 우선순위로 두기보다 금융 논리를 앞세워 원양선사의 생사여탈을 결정짓겠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유리한 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승기를 잡는 듯 보였다. 이듬해 재편하는 얼라이언스에 합류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던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주도하는 동맹에 문을 두드렸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경쟁사가 고사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한진해운이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게 해운업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2016년 9월1일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듬해 2월 파산했다. 현대상선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제대로 된 해운동맹 가입에 실패했다. 세계 최대 얼라이언스 2M(머스크 ·MSC)과 3년짜리 전략적 제휴를 맺는 형태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가입을 거부한 한진해운의 잘못도 있지만, 무엇보다 임 전 금융위원장이 국적선사끼리 싸우도록 몰고 간 게 패착이었다"며 "양대 선사를 합쳐 몸집을 키웠더라면 해운업 경쟁력이 바닥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상황도 2년 전과 비슷하다. 한진해운의 인력과 자산을 인수해 출범한 SM상선은 현대상선에 미주노선 공동운항을 제안하며 정부가 해운사 한 곳만 지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현대상선은 SM상선의 제안을 거부하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등 양측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SM상선의 갈등은 2016년의 복사판"이라며 "일본과 중국은 이미 '1국 1국적 원양선사' 체제로 바뀌었고, 앞으로 유럽도 이 흐름을 따라가는 등 험로가 예상되는데, 국내 선사들은 안방에서 서로 살겠다고 싸우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궁극적으로 원양선사는 선복량 100만~200만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 규모의 메가캐리어 1개, 동남아 항로는 현재 14개에서 2~3개 선사까지 줄이는 방식으로 재편해야 한다"며 "민관이 머리를 맞대 대응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1국 1국적 원양선사로 재편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선복량에서 현대상선은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의 10분의 1수준이고, SM상선은 현대상선의 약 7분의 1토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더라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상선과 SM그룹이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있고, 두 회사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M&A로 획기적인 개선을 꾀하지 않는 이상 국책은행이자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 정부가 한진해운 파산사태 전후 산업적인 판단에 근거하지 않고 해운업 구조조정을 매듭지은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김대진 KDB산업은행 연구위원은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두 회사가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이지만, SM상선이 민간 소유인 점도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산업, 기업 측면에서 다각도로 검토해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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