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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대법 "'여성 할례'도 난민 인정사유" 첫 판결

"특정 사회집단 내 인간의 존엄성 침해하는 '박해'에 해당"

2017-1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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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여성 할례'도 난민 인정 요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여성 할례’는 의료 목적이 아닌 전통적·문화적·종교적 이유에서 여성 생식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의미한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라이베리아 국적의 만 14세 여성인 D양이 "라이베리아로 돌아가면 여성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도 같이 한국에 입국한 어머니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난민 인정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면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적국을 벗어나 대한민국 안에 있으면서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은 법령에 따른 신청절차를 거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정하는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할례’는 여성의 신체에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한다”며 “난민신청인이 국적국으로 송환될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해 여성 할례를 당하게 될 위험이 있는데도 국적국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국적국을 벗어났으면서도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여성 할례를 당하게 될 위험’은 일반적·추상적인 위험의 정도를 넘어 난민신청인이 개별적·구체적으로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를 의미하고, 여성 할례를 당하게 될 개별적·구체적인 위험이 있다는 점은 원고가 속한 가족적·지역적·사회적 상황에 관한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합리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난민 인정 신청을 받은 행정청은 원칙적으로 법령이 정한 난민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해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고, 이와 무관한 다른 사유만을 들어 난민 인정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 사건에서 원고가 국적국으로 돌아갈 경우 여성 할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원고 어머니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원고도 난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피고 결정은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가 난민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하는 행정청과 그에 관한 처분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법원으로서는, 원고가 속한 가족적·지역적·사회적 상황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를 합리적으로 심사해 원고가 국적국으로 돌아갈 경우 여성 할례의 위험에 노출될 개별적·구체적 위험이 인정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피고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D양의 어머니 A씨는 여성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라이베리아 전통단체인 ‘산데 부쉬’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고, D양의 할아버지 역시 A씨를 지지했다. 그러나 ‘산데 부쉬’에 강제로 가입하게 된 A씨는 할례를 받기 전 도망쳤고, D양의 할아버지는 딸의 ‘산데 부쉬’가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단체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A씨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원망과 함께 친척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다.
 
이후 A씨는 가나로 건너가 2002년 12월 가나 난민캠프에서 D양을 출산했고, D양은 어머니의 국적에 따라 라이베리아 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A씨는 D양과 함께 2012년 3월 한국에 입국한 뒤 D양을 대리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인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A씨와 D양이 라이베리아로 돌아갈 경우 범죄의 피해자가 될 우려가 크지만 이런 범죄는 D양의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원인으로 하고 있다는 근거가 없어 난민협약 1조와 난민의정서 1조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D양이 법령에 정한 난민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보다는 사실상 A씨가 난민 요건에 해당하는지만을 심사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이의신청을 했으나 역시 기각되자 A씨가 D양을 대리해 소송을 냈다.
 
1심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손을 들어주면서, A씨가 난민면접 당시 ‘산데 부쉬’로부터 받은 박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지 못해 주장에 신빙성이 없는 점, A씨가 도주한 때가 25년 전이고 살해의 위협은 자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추가 거절사유로 인정했다.
 
A씨가 “서울출입국관리소는 D양에 대한 향후 박해 가능성에 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난민신청을 거부했다”며 D양을 대리해 항소했으나 2심은 “라이베리아 정부가 여성 할례와 같은 전통적 악습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라이베리아 내에서 여성 할례가 없는 지역으로 이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D양의 상황이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기각했다. 이에 A씨가 D양을 대리해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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