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
(토마토칼럼)기업이 가야할 길

2017-07-05 12:43

조회수 : 3,314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기지국과 중계기 등 산불로 소실된 통신장비 피해 현황을 보고하려고 사장실을 찾았던 모 임원은 꾸중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피해 규모를 걱정할 게 아니라 통신 장애로 재난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지역민들을 위해 이동 기지국 등을 투입, 신속한 지원에 나설 것을 건의했어야 한다는 야단이었다.
 
지난 5월 6~9일 강릉과 삼척 등 강원 일대를 뒤덮은 대형 산불은 SK텔레콤의 이기주의도 일부 태웠다. 전 국민이 걱정하는 재난 앞에 기업의 마땅한 의무를 되짚은 박정호 사장의 따끔한 질책은 이익만을 좇던 조직 관행에 대한 경종이었다. SK텔레콤은 직원 100여명과 이동기지국, 비상발전기, 중계기 등을 긴급 투입해 통신망을 복구했고 이재민을 위해 생필품과 휴대전화 무료충전 등의 지원에도 나섰다. 또 재난안전통신망 시범망을 활용, 관계 기관들의 실시간 현장회의 등 진화 작업을 도왔다.
 
같은 달 21일 SK텔레콤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인터넷 및 IPTV 설치·AS 관련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103개 홈센터 직원 약 5200명을 신설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간접채용 논란 속에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기사들을 직접 채용함으로써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새 정부가 역점을 두는 비정규직 대책에 일조함으로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각종 부담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적 의미도 내포됐다. 이 같은 정무적 판단을 감안하더라도 민간부문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브로드밴드의 행보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앞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SK의 변화 의지는 감지됐다. 최태원 회장의 빈자리를 대신했던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김영태·정철길 부회장 3인을 2선으로 물리고, 조대식·박정호·김준 등 신진 세력들을 대거 중용하며 인적쇄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친정체제 구축, 세대교체 등 갖은 해석을 낳았지만 이들을 향한 최 회장의 신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이닉스·이노베이션과 달리 성장이 극히 정체된 텔레콤의 신임 수장이 된 박 사장의 경우 실적의 부담을 덜기 어려울 것이란 안팎의 예상과 달리 “함께 하는 1등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조직 변화를 선도했다. 통신3사가 좁은 내수시장에서 출혈경쟁에 얽매였던 기존 사업모델로는 미래가 없다는 단절적 의미였다. 동시에 독점에서 개방으로, 자력에서 협력으로 구조적 혁신을 도모하는 한편 스타트업의 창의력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만이 연결과 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ICT 기업이 가야할 길이란 뜻이었다. 점유율 50% 수성을 목숨처럼 알던 내부 임직원들은 그간의 부담에서 벗어났고, 이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체계적 준비로 이어졌다. 뉴 ICT 생태계 조성 및 육성에 5조원, 5G 등 미래형 네트워크에 6조원 등 3년간 총 11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계획은 이렇게 나왔다.
 
걱정도 있다. 실적에 대한 부담과 기존 관성을 이겨내는 길은 분명 쉽지 않아 보인다. 최 회장의 신뢰가 언제까지 뒷받침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박정호가 그려나갈 새로운 SKT’를 지켜보는 일은 약육강식의 논리에만 익숙했던 우리에겐 분명 신선하고 흥미 있는 관전이다.

산업1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 김기성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