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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영화 <왕을 참하라>를 보고

영화적 상상력이 우리역사 왜곡하면 안돼

2017-05-30 19:10

조회수 :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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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라는 영화를 봤다. 학부전공 탓인지 한국사에 대한 관심 탓인지 몰라도 우리역사를 모티브로 한 사극영화는 대체로 챙겨보는 편이다. 다만 드라마는 장편이 많아 보기가 어렵다.


 


영화를 보기 전,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에 대한 이야기라는 정도만 파악하고 봤다. 영화 극 초반부에 등장한 자막부터 눈에 거슬렸다. 내용은 이렇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다스렸던 27명의 왕 중에서 제대로 밥벌이를 한 세종과 정조를 빼고 그래도 밥벌레를 겨우 면한 왕이 있었다면 9대 왕 성종이다’


 


먼저 세종을 살펴보자. 1만원권 지폐를 통해서도 친숙한 세종은 아마도 우리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왕 중에 한명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세종‘대’왕이라고 칭한다. 그의 통치기에 조선은 어떠했나?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시기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공’으로 대표되는 당시 국제정치질서를 감안한다면, 명나라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조선이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고 이를 공포하는 일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세종 통치기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강력한 국가의 체제를 갖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세종이 실제로 천재였다는 점은 다양한 사료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편경’이란 타악기가 있는데, 지금의 음계로 따지자면 1/16음계의 오차를 귀로 듣고 알아차렸다는 일화도 있다. 게다가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말년에는 눈이 거의 멀 정도로 시력이 악화됐다고도 한다. 이외에도 당시 조선의 전국 경작 가능한 농지, 당시 군대의 국방력 등을 수치화하면 조선시대를 통틀어 거의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종도 그러한 태평성대를 스스로 이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아버지인 태종 즉, 이방원이 손에 묻힌 엄청난 피가 세종 시기 강병부국의 토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정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도 역시, 할아버지인 영조가 무너진 왕권을 탕평책으로 어느 정도 복원시켜 놓은 토대를 현명하게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 세종에 버금가는 천재였음이 기록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정조‘대’왕이라는 호칭이 심심찮게 보인다. 4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왜 세종과 정조를 ‘밥벌레’가 아닌 왕으로 꼽았을까? 둘은 각각 조선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불과할지 모르나, 조선사는 대게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기준은 임진왜란이다. 임란 이후 조선은 그 이전의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왜국의 침략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전후 조선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됐다. 인구도 1/3이 줄었다. 이렇듯 전기의 대표와 후기의 대표로 각각 세종과 정조를 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벌레’라는 표현은 별로 어울리지가 않는다. 먼저 조선 아니 그 이전에 우리 땅에 존재했던 수많은 국가의 왕(또는 황제)들을 봐도 밥벌레가 아닌 이들을 찾기가 더 어렵다. 여기서 밥벌레는 왕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점을 꼬집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의 통치자는 지금의 대통령 등 정치적 지도자와 대조해서 볼 수 없다. 게다가 ‘왕의 역할’이라는 점도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럼 성종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조선 건국부터 성종까지의 시기가 100년가량 된다. ‘成’이라는 시호를 후대에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기틀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성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어머니 인수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인수대비에 대해서도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추후 다뤄보기로 한다.) 물론 장성한 후에는 본인이 직접 정사를 돌봤다. 성종의 업적으로 조선의 헌법이라고도 칭해지는 ‘경국대전’의 완성을 꼽는다. 이호예병형공의 6개 분야로 나눠서 각각 이전, 호전 등으로 구성됐다. 수양대군으로 더 잘 알려진 선대 왕인 세조 시기부터 편찬작업이 시작돼 성종 시기에 6전이 모두 완성된 것이다.


 


영화는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로 더 많이 알려진 성종을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 거의 색마에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어우동이란 섹슈얼을 가미해 참으로 모호한 19금 영화를 만들어냈다. 성종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 거슬린다는 말이 아니다. ‘주요순야걸주’ 낮에는 요임금, 순임금과 같았으나 밤에는 걸왕, 주왕 같은 폭군과 같았다는 야사에 등장하는 성종의 별명에서 큰 모티브를 얻은 듯하다. 그러나 이를 맛깔나게 풀지 못한 한계가 아쉽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1000만 영화 반열에 오른 <광해 왕이된 남자>의 경우가 상당한 모범사례라고 생각한다. 영화 <광해>는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왕이 15일간 종적을 감췄다’라는 한 마디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했다. 물론 미국의 1993년 작, 영화 <데이브>를 표절한 것이란 논란이 일기도 했다.(실제로 상당히 비슷한 면이 많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놨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역사에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재미있는 역사극을 영화로 풀어내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처럼 영화에 자막을 통해서 게다가 단언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러이러한 견해도 있다’라든지 ‘저러저러한 해석도 존재한다’는 것은 좋다.


 


출처도 밝히지도 않고 조선사에서 밥벌레를 면한 왕이 성종과 세종, 정조 3명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우리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주연 강연정씨의 연기는 좋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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