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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진

(토마토칼럼)무분별한 법인카드 사용 문제없나

2016-1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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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먹고살기 힘들어진 서민들의 한숨과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 개업한 가게들은 몇 달도 안 돼 문을 닫는데, 불황이 깊어질수록 호황을 겪는 간판가게는 오히려 성업 중이다. 많은 이들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도 요즘처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인분에 10만원이 넘는 고급식당은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예약자가 몰리고, 한 병에 수십만원씩 하는 술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해외 여행객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결제금액도 급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불황을 겪고 있는 것인지 호황인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이 같은 상반된 현상을 단지 빈부격차의 급증과 부유층의 과소비 행태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 일본경제신문 기자였던 타마키 타다시씨는 그의 저서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에서 그 원인을 한국에는 ‘법인경제’와 ‘서민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법인경제의 핵심은 ‘법인카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법인카드는 목적만 벗어나지 않으면 일정 한도에서 자유롭게 지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카드에 비해 결제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 
 
법인카드는 접대 목적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 골프장 등이 주요 사용처가 된다. 서민들의 소비지출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고급 음식점이나 골프장이 성업할 수 있는 원인은 법인카드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법인카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물 쓰듯 사용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거주자의 해외에서 사용한 법인카드 금액은 9조7922억원이다. 법인카드의 1인당 사용금액은 357만4132원으로 같은 기간 개인카드 사용자가 쓴 143만5016원의 2.5배에 달했다.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는 지출과 세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법인카드의 효용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법인카드를 많이 써서 소비가 늘어나면 경기가 좋아지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인카드 사용은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것인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경제는 현재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느 순간부터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주식 등 모든 자산가격도 더 이상 오르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본이 지난 잃어버린 20년 동안 겪었던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미래가 닥치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방치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법인경제 역시 디플레이션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무분별한 법인카드 사용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소비이고, 시장논리에 따라 떨어져야 할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도 아니다. 더욱이 접대문화가 만연한 한국의 법인경제는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는 점에서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돼야 할 시점이다.
 
정경진 뉴스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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