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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김장수의 사과, 김석균의 변명

2016-12-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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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경부 기자
#1.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한다. 동독을 국가로 승인한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기존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구권과의 교류·협력을 골자로 하는 ‘동방정책’을 주창한 그에게는 바로 옆 폴란드와의 우호조약 체결이 시급했다. 대내·외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를 찾은 그는 12월7일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추모비 앞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묵념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릎을 꿇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브란트 수상은 자신의 방문을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폴란드 국민들의 선입견을 이 장면 하나로 단숨에 바꿔버렸다. 이 장면은 20년 후 독일 통일의 밑바탕으로까지 작용하며,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사과로 평가받는다.
 
#2.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조특위’ 3차 청문회. 많은 이들이 이날 청문회를 통해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따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12시간 넘게 지켜본 것이 무색하리만큼 이날 청문회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출석한 증인들은 자신이 역할을 다했고, 자신이 속한 부서는 컨트롤타워가 아니었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청문회 말미,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 해군 해난구조선 통영함 출동문제에 대해 ‘대통령 보고감이 아니다’라고 말한데 대한 사과 의사를 물었다. 이에 대한 김 전 실장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안보실장이 지휘통제 체계상 지시할 수 없다는 표현이 그렇게 됐다. 국민들과 유가족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음을 삭이시기를 바란다. 죄송하다.” 청문회를 지켜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에 대해 “당시 해양수산부가 갖고 있던 해양사고 매뉴얼에 청와대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임을 명시했음에도 이를 부정한 형식적 사과”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구조노력 부족 지적에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급박한 여건에서 가용 구조세력이 총 동원돼 나름대로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했다”며 한술 더 떴다. 세월호 침몰 신고 후 1시간이 다되도록 “아직 구조단계는 아니고,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는 해경 상황실과 청와대 간 녹취파일이 청문회장에 울려 퍼진 후 나온 조직 수장의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궁색했다. 김 전 청장은 답변 내용에 불만을 표시하며 대화를 요구하는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팔을 잡자 뿌리치며 청문회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불충분한 사과는 안하느니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에드윈 바티스텔라는 책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불충분한 사과는 새로운 빌미를 만들거나 사과 요구로 회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불충분한 사과가 이뤄질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더 많은 협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날 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니 책의 내용이 현실이 될 것 같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추모비를 찾아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사용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게재한 뉴욕타임즈 2012년 5월29일자 전면광고(오른쪽). 사진/뉴시스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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