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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훈

(현장에서)수첩을 내려놓고 촛불을 들다

2016-1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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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은 누구보다 중립적이고 냉정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제 갓 1년 차인 기자도 항상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그러지 못했다. 기자는 매 순간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싶었고, 문화제 공연에 맞춰 허공에 손을 흔들어보고도 싶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거리에 나와 역사의 현장을 만끽하는 시민들이 내심 부러웠다.
 
지난 토요일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제7차 촛불집회가 열린 이 날도 기자는 어김없이 광장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당일 비번이었기 때문에 데스크의 별도 취재지시가 없어 ‘자유의 몸’이라는 정도. 평소 거북이 등딱지처럼 매고 다녔던 무거운 가방은 애당초 내팽개치고 나갔다.
 
광장에 도착해 시민들 틈을 비집고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보고 싶던 촛불 파도타기도 하고, 가수 이은미씨 노래에 맞춰 즐겁게 손뼉도 쳤다. 그리고 시작된 행진. 오후 8시 기준 체감온도는 영하 3도까지 내려갔다. 양말을 두 겹이나 신고 나갔는데 발끝이 시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청운동 주민센터 앞까지 열심히 걸었다.
 
마냥 걷기도 지루해질 무렵 직업정신에 어쩌지 못한 ‘말 걸기’에 나섰다. ‘춥지 않으세요’, ‘탄핵소추안 가결됐는데 왜 나오셨어요’, ‘헌재가 어떻게 판단 할까요’ 등을 물었다. 평소처럼 시민들 반응을 핸드폰이나 수첩에 받아 적지는 않았다. 집회를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손이 너무 시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화를 나눈 시민 대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반응이었다. 시민들은 탄핵소추안 가결이 당연히 될 거로 생각했고, 헌법재판소도 촛불민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생 몇몇은 ‘앞으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해맑게 답했다.
 
그 사이 1시간가량의 행진을 마치고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제7차 촛불집회 최종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서울 80만명, 지방 24만3400명으로 집계됐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촛불민심’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언제 또다시 ‘횃불민심’이 될지 모르는 상황.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최악의 정치는 백성(국민)과 싸우는 정치’라고 한다. 앞으로 이 ‘최악의 정치’가 얼마나 갈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게 누가 됐든 간에 부디 국민을 이기려는 생각은 하루빨리 접어두길 바란다. 그때까지 기자도 잠시 ‘촛불’을 내려놓고 촛불민심을 가감 없이 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진다. 
 
조용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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