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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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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30년 한국 외교 금자탑, 북방정책 어디로…

'워싱턴 선언' 사인도 하기 전에 미국, 중국에 사전 브리핑…윤 정부, 혼자 뭐 하나

2023-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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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일대를 산책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해 방한 당시 선물한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 국가대표 야구팀 점퍼를 입고 산책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우선 두 문장을 비교해보겠습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윤석열 대통령, 24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그 (태평양)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2015년 8월14일 '전후 70년 담화')
 
똑같지 않습니까? 여기에 아베 전 총리가 5년 뒤인 2020년 인터뷰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 것(전후 70년 담화) 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 것까지 더하면 흡사 '동의어'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의 일반적 특징인 식민적 사고체계가 내면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부친 따라 어렸을 때 본 일본을 '정직', ’정확’, ‘깨끗함’으로 정의하고, 미국에 대해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던 지난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때부터 우주는 제게 꿈이자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윤 대통령, 미국은 도청해도 상관없다는 막무가내
 
방문 정상회담을 앞둔 덕담이 아닙니다. 단순 립서비스라면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마저 일본 입장으로 생각하게 만든 ‘무릎’ 발언이 나올 수 없고,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해도 상관없다는 막무가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이 '아메리칸 키즈', '재팬 키즈'라면 그럴 수 있다고 지나칠 일이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김태효 그룹' 전체가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중 갈등 심화와 북한의 핵 고도화, 우크라이나 전쟁을 매개로 한 윤 대통령의 미일 편중 외교가, 한국 외교의 빛나는 금자탑인 북방 정책을 파탄내고 있습니다. 북방정책은 세계화 흐름을 타고 지난 30년간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외교·안보적으로도 북한을 압박하면서 김영삼정부 이후 대북관여·햇볕정책을 가능케 한 기본 토대였습니다. 반대로 북한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의힘 전신 정부들이 북방외교를 소중히 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높인 것은 이명박정부였고,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결정한 것이 박근혜정부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노골화하는 반면 시진핑 주석과는 딱 25분 만났습니다. 급기야 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공식화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한중 수교의 전제였던 '하나의 중국' 원칙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7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태국 방콕에서 만나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중일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대만 문제에 대해 양국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도록 다양한 채널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사진=뉴시스)

기시다 정부, 중국과 군사 핫라인까지 설치…대미 밀착과 별개로 독자 외교
 
북한 핵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은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북방외교를 내팽개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본 기시다 정부의 친중 독자노선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들어 중일 외무·국방 장관들이 회담(2+2 회담)을 연 데 이어 군사 당국 간 핫라인까지 개설했고,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이 일본 외상으로서는 3년 만에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외교부장을 비롯해 중국 외교 책임자인 왕이 정치국원과 리창 총리까지 만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베이징에서 왕이 정치국원을 만났고, 기시다 총리 당선 일등공신이자 '킹 메이커'로 알려진 대표적 친중파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이 일중 의원연맹의 새 회장을 맡았습니다. 미국과 밀착하는 동시에 중국과도 독자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에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사인하기도 전에, 즉 한미 협의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중국에 사전 브리핑을 해줬습니다. 한국 등 역내 국가의 연쇄 핵무장을 막기 위한 노력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최선"이라는 겁니다.
 
한미 핵협의그룹,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귀결 가능성 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갈등하는 한편으로 이렇게 외교를 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 혼자만 뭐 하고 있는 건가요? 
 
윤 대통령 인식대로 이제 북방은 우리가 오로지 맞서야만 하는, 무가치한 대상이 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져도 우리에게는 꽤 오랜 기간 최대 경제 파트너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는 그간  장벽이 높은 미국과 유럽에 비해 한국과의 기술협력에 개방적이었습니다. 수교 초기부터 원천기술 상용화를 도와준 것입니다. 우주발사체 '나로호'는 러시아의 지원으로 발사장 건설과 로켓 제작에 성공했고, '한국형 미사일'인 천궁과 신궁은 러시아의 유도조정 센서기술을 도입해 국산화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안보적으로 북방외교는 남한의 중국, 소련(러시아) 수교와 북한의 미국, 일본 수교 즉, 교차 수교로 최종 완성됩니다. 햇볕정책은 햇볕을 쪼여서 북한 외투를 벗긴다는 단세포 구상이 아니라, 교차 수교를 통해 동북아 전체에 화해를 정착시키겠다는 대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오로지 '한미일'입니다. 외교부 문서에서 '한중일' 순서를 '한일중'으로 바꾼 것이 그 유치한 단면입니다. 미국은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한미일 NCG로 확대하려 할 것이고 이는 최종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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