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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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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서진이네'가 불편한 이유

2023-03-03 17:45

조회수 : 5,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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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개국공신이자 스타피디인 나영석PD가 다시 글로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내놨습니다. '윤식당' 시리즈에서 직원에 불과했던 이서진 배우가 이번에는 '사장'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세계적인 그룹 BTS의 '뷔'까지 영입한 것을 보면 세계시장까지 겨냥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과거 '윤식당'이 해외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를 통해 한식의 우수함과 경쟁력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식당(2017)에 이어 윤식당2(2018), 그리고 한국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윤스테이(2021)'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이 모여 식당 등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서진이네는 멕시코 한적한 관광지에 자리 잡았습니다. 윤식당의 큰 틀은 유지된 것 같습니다. 꽃다운 미모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5명의 연예인들이 모여 각자 역할을 분담해 영업을 합니다. 5명의 연예인은 매일 아침 사업장 인근의 시장에서 당일 판매할 요리재료를 '소꿉놀이'하듯 구입합니다. 
 
그리고 국내 유명쉐프에게 특별과외를 통해 전수받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듭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이 즐비합니다. 눈이 즐겁습니다. 서울에서 수많은 연습을 해왔건만 옆구리가 터져버린 김밥과 퇴김기에 타버린 핫도그에 연예인들은 속상해합니다. 홀서빙과 사장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해외에서 한식을 접한 이들의 반응을 접하며 신기해하면서 시청했던 윤식당 시리즈와 달리 서진이네가 이제 조금은 불편합니다. 보통의 생계를 위해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의 생활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겠죠. 대부분의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는 원가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값싼 도매시장과 도매사업체에서 요리재료를 공수합니다. 보통의 식당에서 육수 티백 사용은 엄두도 못냅니다. (육수티백은 갖가지 재료를 하나씩 모아 넣는 것보다 단가가 비싸답니다) 
 
서진이네는 어떨까요. 이들은 치밀한 원가계산과 경쟁가게와 비교가 아닌 '집단지성'으로 음식의 단가를 결정합니다. 임대료나 재료의 비용 따위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최고 수준의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만들었을 매장은 또 얼마나 모던하고 감각적이던가요. 현실에서 그런 인테리어를 구현하려면 못해도 몇 억은 들어갑니다.
 
보통의 자영업자는 손님 몇명이 오느냐가 그날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왜냐고요? 물건이나 음식을 팔아서 원가를 충당해야하고, 거기에다 인건비, 임대료, 그리고 최근에 올라버린 난방비까지…자영업자가 감당해야하는 보이지 않는 '짐'은 너무나 많습니다. 
 
코로나19 를 거치면서 우리는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목도했습니다. 전염병으로 치부되던 코로나19를 피해 사람들은 발길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살았던 이들은 하나둘씩 쓰러졌습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1월 기준 국내 자영업자 수는 549만명입니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20% 수준인데, 이는 취업자 5명 가운데 1명은 자영업자라는 얘기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높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소득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정돕니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개인기업체의 2021년 월평균소득은 196만원입니다. 당시의 최저임금으로 환산한 월급보다 10% 가량 높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번듯한 가게의 사장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에 조금 웃도는 돈을 버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자영업은 사람을 '갈아넣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겁니다. 
 
서진이네는 한국분식과 한국문화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만, 자영업자의 현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무슨 예능프로그램을 그리 정색하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진이네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다만 서진이네를 보고 누군가 '자영업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모든 자영업자가 저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에서 소꿉놀이하듯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능에서는 사람들이 알기 싫고 불편해할 현실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국적인 풍광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일하는 연예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장사나 해볼까' 하는 이들이 혹시나 생겨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듭니다. 기우면 좋겠습니다. 
 
2021년 11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경기, 나영석(오른쪽) PD와 배우 이서진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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