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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023-01-25 17:53

조회수 : 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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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동묘역점에서 어르신들이 키오스크 주문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안합니다. 너무 기다리게 해서……”
 
며칠 전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어르신이 키오스크를 등지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결제를 마치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자 뒷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한 것입니다.
 
제 차례가 됐습니다. 키오스크를 써보니 그분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IT기기에 익숙한 저로서도 조잡하고 글자가 많은 메뉴판은 헷갈렸습니다. 작은 화면에 깨알 같은 글씨, 방대한 메뉴가 쏟아져 나오니 직관적으로 메뉴를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분명 IT기기에 익숙한, 젊은 사람에게도 어려웠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익숙하지 않은 키오스크를 써야했으니 어르신의 어려움이 이해됐습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터치스크린 기반의 무인 결제 시스템, 키오스크는 음식점, 병원, 영화관 등 점차 일상 속을 파고 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티켓 출력을 위한 키오스크가 꽤 일찍부터 자리 잡았던 영화관의 경우에는 최근 팝콘 등을 판매하는 곳까지 키오스크가 들어섰습니다. 
 
키오스크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을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중은 젊은 신세대보다 기성세대가 더 크겠지요.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이제 막 적응했는데, 또 다른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라고 합니다. 기술의 발전, 보급 속도가 적응 속도보다 빠른 탓입니다. 그렇다고 기술의 발전, 보급 속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 격차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을 활용하는 계층은 지식과 소득이 증가하는 반면 디지털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해 계층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 소득뿐만 아니라 생각, 문화, 세대 간의 격차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잠깐 생각을 해봤습니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만난 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는 미안함에 키오스크 사용을 두려워하게 된다면 그 역시도 디지털 세상과 점차 고립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서툴러도 기다릴 줄 알고, 서툰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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