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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2022 정치결산)②"K-정치는 어디 있습니까"…국회도 낙제점 못 피했다

내년도 예산안, 2014년 국회 선진화법 이후 최장 지각 처리 오명

2022-12-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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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올해 정치권은 민생을 위한 터전을 닦아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낙제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여야는 연신 정쟁만을 벌이며 내년도 예산안을 지각 처리했고, 각각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하명에만 기댄 '하청정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에만 집중하는 '방탄정당'에 머물렀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638조7276억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지만, 2014년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 최장 지각 처리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이달 2일 법정처리 시한, 9일 정기국회 종료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최종 시한으로 정했던 15일과 19일까지 총 네 차례나 데드라인을 넘겼다. 그간 타협보다는 서로의 주장만을 강조한 결과로, 국회의 지루한 싸움은 국민에게 피로만을 안겼다. 속 시원한 합의보다는 무늬만 '협의'인 대립 구도가 이어지면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입법기관 국회가 과연 제대로 된 기능을 다하고 있느냐는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특히 9월1일 민생경제 회복을 기치로 호기롭게 닻을 올렸던 올해 정기국회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종료됐다. 처음 시작만 해도 여야는 통과시켜야 할 민생법안들을 앞다퉈 발표하며, 민생을 위한 해결사임을 자처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이와 반대 행보를 걸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국회(임시회) 제401-1차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항의하며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좌석이 텅 비어 있다. (사진=뉴시스)
 
여야가 정작 관심을 가진 것은 정쟁이었다. 검찰이 정기국회 후 일주일여 지난 9월8일 이재명 대표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같은 날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핵심 인물이자 김씨의 수행비서였던 배모(전 경기도청 5급 사무관)씨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및 기부행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자 민주당은 윤 대통령 고발과 '김건희 특검법' 발의로 맞받았다.
 
감사원이 10월18일 '문재인정부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사실상 월북몰이를 했다'는 중간 감사 결과 발표와 함께 문재인정부 인사들인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자 민주당은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하며 맞불을 놨다. 
 
여야는 이태원 참사로 인해 지난달 잠시 정쟁 중단을 선언했으나, 곧바로 이 참사를 놓고 격돌했다. 민주당은 참사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했으나 정부로부터 거부당하자 지난달 30일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 역시 거부했다. 예산안 협상 지연으로 인해 파행을 거듭하던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지난 21일·23일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27일·30일 기관보고, 내년 1월4일·6일 청문회 등 벼락치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다누리호 달 궤도 진입 성공 발언에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여야 모두 내부 리더십은 실종됐다. 대통령실 오더만 기다린 국민의힘은 사실상 대통령실 하청정당으로 전락했다는 야당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차기 전당대회 경선 룰은 당원 100%가 좋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뒤 국민의힘은 서둘러 국민여론조사를 없애는 전당대회 룰 개정 작업을 마쳤다.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도 대통령실 입김은 어김없이 작용했다. 지난 22일 합의문을 낭독하기 전 여야는 이미 예산안을 놓고 큰 틀에서 합의에 근접했으나, 대통령실의 승인을 최종 절차로 기다렸다는 풍문이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며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시하자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슈퍼초부자 감세와 위법 시행령 예산을 끝까지 관철하라'는 용산의 뜻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당이 '용산 아바타'로 전락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매몰되며 민생정당으로서의 차별화를 꾀하지 못했다. 말로는 계속 민생을 외쳤지만, 계속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대강 노선을 택하면서 민생보다는 정쟁에 치중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취임 석 달도 안 돼 지지율이 20%대까지 급락한 윤석열정부의 대안정당으로 국민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 추락했던 윤 대통령 지지율과 상관없이 민주당 정당 지지도가 내내 40%대 박스권에 갇힌 것은 윤석열정부에 실망한 지지층을 민주당이 그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오르면서 민주당은 더 큰 고민에 빠졌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올해 여야가 협치보다 정쟁에 매몰된 이유는 결국 윤 대통령에게 있다. 야당은 최소한의 협치와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면 달랐겠지만, 대화가 단절되면서 강대강 대치가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처럼 2002년 제왕적 총재 제도가 없어진 이후 그간 20년 동안 이렇게 당무에 직접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은 정당 계파 수장을 떠나 국가 원수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야당 관련해서도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가 진작에 검찰 수사에 당당히 임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고 진단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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