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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님, 어떤 의도냐고요?

2022-10-06 12:27

조회수 : 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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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어떤 의도로 질문하신 거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5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중 있었던 비속어 파문에 대한 사과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공식 브리핑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기자는 "'이 XX들' 발언에 대통령의 직접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최소한 국회라든지 야당에 사과 표명은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관계자는 "따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빠르게 다음 질문으로 순서를 넘겼습니다. 질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해당 논란 자체를 덮고 가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백-백 그라운드 브리핑(백브리핑 후 걸어가면서 추가 질의응답)에 붙어 재차 해당 사안에 대해 묻자, 이 관계자는 "어떤 의도로 질문한 거냐"고 되묻더군요.
 
지난달 30일 발표된 본지 정기 여론조사에서 국민 60% 이상이 비속어 대상이 된 국회와 민주당을 향한 윤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6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공동조사한 '전국지표조사'에서는 '비속어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70%가 '동의한다'고 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이 이럼에도 사건 당사자이자 논란의 진원지인 대통령실에서 '어떤 의도' 운운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관계자가 '어떤 의도'를 진짜 몰랐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도를 몰랐다면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고위 관계자로서 실격이고, 의도를 알고도 그리 답한 거면 국민에 대한 오만입니다.
 
△고위 관계자 = "실장께서 고위 당정청에서 말씀하신 것 봤느냐. 뭐라고 하더냐"

△기자 ="가짜뉴스라고 말씀하시더라"

△고위 관계자 = "아니죠. 전체적으로 뭐라고 말씀하셨죠?"

△기자 = "야당 공격이라고 언급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말씀하셨는데요?"

△고위 관계자 = "살펴보세요"
 
김대기 비서실장이 지난 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전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를 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추가 답변이었습니다.
 
발언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당시 김 실장은 "언론사가 가짜뉴스로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도 있었고 대통령의 외교 성과가 상당한데도 국회에선 외교장관 해임을 건의하는 일도 있었다"며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아마 '김 실장이 면목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는 게 사실상의 유감 표명이라는 설명입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가 국민께 면목이 없다는 건지, 야당의 문제 제기로 혼란스러운 현 정국이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김 실장 발언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 XX'라고 지칭한 국회에 대한 사과는 명확하게 빠져 있습니다. 온 국민을 청력 테스트로 몰아넣었던 '바이든' 대 '날리면'에 이어 이제 해석 테스트까지 해야 할 판입니다.
 
특히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기대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유체이탈 화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논란을 야기한 건 비속어를 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진의 어설픈 해명 때문인데, 이를 야당 탓, 언론 탓, 질문한 기자 탓으로 돌리는 대통령실의 기묘한 능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는 수석의 입장과 대통령의 입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어떤 의도로 질문한 거냐"는 게 비속어 논란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입장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비속어 논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현 상황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논란 이후 이 관계자가  대통령실에서 가진 첫 공식 브리핑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는 국민을 대신한 기자의 물음에 성실하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 관련해 바이든 친서만 늘어놨습니다. 국민이 궁금한 사과 여부나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국회에 대한 유감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통령실의 홍보는 치적보다 잘못된 점을 진솔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아닐까요? 이쯤되면 20%대까지 추락한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을 깎아먹는 원인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기자의 질문은 누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국민을 대신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다소 날카로움이 묻어날 수는 있어도, 이를 '의도가 뭐냐'는 대통령실의 반론은 '국민을 향한 오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말 나온 김에 질문의 의도를 물으셨으니 답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의도는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의 상식'이었습니다.
 
정치팀장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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