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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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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 인노회 전부터 '프락치' 의심"

81학번 성균관대 동문들 증언…인노회 명단 넘기고 특채로 '경찰 발탁' 의심

2022-08-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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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경찰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에 임명된 김순호 치안감이 1989년 '대공 특채'로 임용된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김 국장이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활동을 하다가 돌연 자취를 감춘 뒤 인노위 소속 인사들이 차례로 구속됐고, 이후 김 국장이 특채로 경찰에 발탁되면서 그 배경에 의심이 제기됐다. 당시 인노회 활동가들은 정황상 김 국장이 동료들의 정보를 경찰에 제공한 공로로 특채 임용됐다는 강한 의구심을 전했다. 여기에 김 국장이 인노회 활동 전에 이미 프락치(밀정)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추가로 나왔다.
 
<뉴스토마토>는 9일 김순호 국장과 1986년 노동운동, 1988~1989년 인노회 활동을 같이 한 성균관대 81학번 동문들에게 당시 상황과 함께 김 국장을 '프락치'로 의심할 만한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 국장의 성균관대 81학번 동문들은 "김순호가 사라진 후 1989년 4월 중순쯤 이후 인노회 회원들이 연행돼서 구속되기 시작했고, (김순호는)사라진 지 4개월 만에 대공 경찰이 돼서 나타났다"며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만하다"고 입을 모아 주장했다.
 
당시 성대 동문들에 따르면, 김 국장은 1981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1년 선배인 최동 열사 등과 함께 학내서클 '심산연구회'에 가입해 학생운동을 하다 1983년 4월 군에 강제 징집됐다. 이후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녹화사업(학원프락치공작) 대상이 됐고, 1985년 전역 후 부천지역에서 최동 열사 등과 노동운동을 하다 1988년 김봉진이란 가명으로 인노회에 가입해 부천 지구위원장까지 지냈다.
 
인노회는 1988년 2월에 만들어졌다. 그러다 이듬해 1989년 1월부터 인노회가 이적단체로 몰리면서 탄압을 받았고, 관련자들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구속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요 활동가들이 같은 해 6월에 기소되면서 조직이 사실상 해체됐다.
 
당시 인노회 사건 관련자이자 현재 강제징집 녹화사업 진상규명추진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한 성대 동문 A씨는 김 국장의 프락치 의혹에 대해 "사람의 급격한 변화는 사실 예상하기 힘들다"면서도 "1989년 4월까지 노동운동 한다고 부천 공장 현장에 있던 친구 김순호가 1989년 8월에 사라진지 4개월 만에 보안과 대공경찰로 갑자기 나타났다. 상식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순호가 사라진 후 1989년 4월 중순쯤 이후 인노회 회원들이 연행돼서 구속되기 시작했고, 최동 (열사)도 구속됐다. 나머지 친구들은 조사받고 훈방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김순호는 연락두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1989년 8월에 울산에 대공경찰로 가있더라. (당시)노동자 대투쟁이 현대차 사태 등 울산에서 많았다"며 "김순호의 경찰 발탁, 특히 특채면 공로가 있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성대 동문 B씨도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제가 당시 수사받았을 때 그쪽(수사하는 쪽)에서 (인노회 활동가 조직표와 활동 내역 등을)너무 상세히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그것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위치에 있던 사람이 김순호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김순호)이 잠적하고, 나중에 경찰이 됐고, 그런 것들을 보면 그 친구(김순호)가 프락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부천 지역 전체 분회원들의 명단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김순호 국장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당시 인노회는 부천, 주안, 부평 등 3개 지구로 나눠 활동했고, 김 국장은 당시 부천 지구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B씨는 "(김순호는)전체적인 분회장과 분회원을 망라해서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던 친구"라며 "머릿속으로도 (명단을)다 숙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B씨는 또 2~3일 정도 수사를 받은 이후 가까운 사이였던 김순호 국장을 찾아갔을 때 김 국장의 반응이 의아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당시는 1989년 5월로 김 국장이 경찰에 특채되기 전의 일이었다. B씨는 "김순호 이 친구가 프락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찾아갔었는데, 그때 그 친구(김순호) 반응이 '너 왜 왔니'라고 어눌하게 이야기했다"며 "저한테 그렇게 물어볼 내용이 아니었다. 제가 경찰서에 갔다왔는데 '너 여기 왜 왔냐'는 식으로, 완전히 돌변해 있다는 느낌을 그 당시 받았다"고 했다. B씨는 김 국장이 당연히 '수고했다'며 그간의 노고를 격려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을 방문해 김순호 경찰국장 등 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노회 활동 전에 이미 김 국장이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986년 말까지 부천지역에서 김 국장과 노동 활동을 같이 했던 성대 동문 C씨는 "김순호는 1986년 말에 이미 (노동 현장)팀에서 프락치라고 결론을 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부천에서 (김순호를 포함해)5~6명이 현장에서 서로 공부도 같이 하고 현장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모임을 만들었다"며 "1986년 말 겨울에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기로 하고, 회의 장소는 부천공전(현 부천대) 사열대 앞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김순호가 갑자기 회의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경찰에)잡혀갔는지 살펴봤는데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식이 없어서 당연히 프락치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C씨는 이미 부천 지역 내에 김순호 국장이 프락치라고 소문이 나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김 국장이 인노회 부천 지역 총책임자가 됐다는 소식을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부천 인구가 100만도 아니고 2~30만 정도 됐고,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며 "우리는 이미 (김순호가)프락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인노회 부천 지역 책임자가 될 수 있었는지 납득이 안 갔다"고 했다.
 
김 국장은 최근 자신에 대한 프락치 의혹과 관련해 인노회 회원들이 잡혀간 뒤 경찰에 찾아가 자백했을 뿐이고 경찰에서 인노회 회원들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기된 특채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부인으로 일관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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