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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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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토마토 산업1부 김진양입니다.
유급을 반기는 나라

2022-08-03 17:00

조회수 : 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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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유치원 같은 반에는 독일에서 온 친구가 있다.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독일인인 아이인데 한국어 교육을 위해 잠시 귀국을 했단다. 아빠를 남겨두고 모녀만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데에는 코로나19도 한 몫을 했다. 
 
아이는 한국과 독일의 교육을 모두 경험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대학까지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아이 엄마가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현지의 교육 시스템을 접해 문화 충격(?)에 노출됐다. 
 
아이가 돌 무렵 어린이집을 처음 갔을 때부터 충격의 연속이라 했다. 혹시라도 오염된 환경에 노출될까 노심초사 1년을 키운 아이가 등원 며칠 만에 진흙 범벅이 되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지난 시간이 무상해졌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옷 주머니 곳곳에 숨겨진 모래를 터는 일이 첫 번째 일과라 했다. 
 
이제 겨우 말을 익힌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온 것은 시간이 이 때 뿐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9월 학기제인 독일에서 만 5세 아이는 내년 가을이면 초등학교에 가야하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학교 허락이 없이는 출국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한국처럼 부모 의사에 따라 체험학습을 이유로 장기간 결석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만큼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배움을 해결하겠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였다. 
 
독일이 공교육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일화는 또 있다. 동양인 학부형은 입학 후 반드시 담임 교사에게 소환(?)이 된다고 했다. 절대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기 위해서란다. 만일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방식으로, 다시 말해 사교육을 통해 배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면 정답이 맞더라고 오답 처리를 하겠다 경고를 한다고 했다. 굳이 선행학습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또한 학년별로 유급을 반드시 시켜야 하는 할당 비율이 있다고도 했다. 특정 과목에서라도 성취도가 기준에 못 미치면 진급이 안되는데, 유급을 한 것이 큰 흠도 아니라고 했다. 오로지 1등 만을 위해 아이들을 경쟁의 최전선으로 내모는 국내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매우 생경한 모습이다. 
 
유급이 아무렇지도 않은 이 나라에선 오히려 학습이 부족했으니 유급을 시켜달라는 민원도 줄을 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만 이어가다보니 성취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엄마들 사이에서 '제발 우리 아이를 유급시켜달라'는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 학교 측은 '원칙대로 해야 한다'며 정해진 인원만을 유급시켰고, 그 해에 유급 대상자는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고 한다. 공교육에 대한 학교의 자신감, 공교육에 대한 학부형의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찌보면 좀 빡빡해보이는 이 교육 환경에도 융통성은 있었다. 9월 학기제면 해당연도 9월생부터 다음연도 8월생까지가 입학 대상자인데, 7~8월생 중에서 입학을 원치 않으면 차년도로 미룰 수도 있다고 했다. 8월생 아이를 어거지로 학교에 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할 만큼, 이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했다.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추는 것을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요즘, 새삼스레 독일의 교육 철학이 부러워졌다. 몇 살에 학교를 가고 졸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울 것이냐가 핵심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를 조금이라도 일찍 공교육의 틀 안으로 품으려 했다면, 그에 맞는 대안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간을 보듯 일단 뱉어놓고 분위기를 봐가며 수습을 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위로받으려는게 아니고요, 장관님". 이 순간 박순애 장관은 그저 뻘쭘했을 뿐일까. 왜 애 엄마들이 이렇게 화를 내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정책의 마루타가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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