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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율

창작과 모방, 애매한 접점

2022-07-15 16:53

조회수 : 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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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8년 경력의 베테랑 작곡가 유희열의 표절 논란이 두번의 사과문에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생활음악 프로젝트 하나로 내놓은 피아노 연주곡 '아주 사적인 밤'이 발단이 됐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를 베꼈다는 의혹제기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번 일은 음악계 전반의 창작 윤리의식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사건으로 번졌다. 
 
'좋은 사람'부터 '공원에서', '너의 바다에 머무네' 등 특별히 좋아했던 곡들이 표절 의혹에 휩싸이면서 그간 팬으로써 좋아했던 나의 추억이 훼손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희열을 같이 좋아했던 일부 친구들은 "어디까지 표절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해. 코드 진행 비슷한 건 워낙 많기도 하고", "원곡자도 표절이 아니라고 하고, 원래 그렇게 쓰기로 작정하고 쓴거라 표절이 아닌데?"라며 생각보다 우호적으로 그를 감싸기도 했다.
 
똑같은 곡을 듣고도 제각각의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우려가 교차했다. 유희열 이전에도 여러 가수 및 작곡가들의 표절논란은 있어왔지만 특별하게 사카모토 류이치를 오랜기간 존경한 탓(?)에 똑같이 모방을 해버린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그의 곡 외에도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아무렇지 않게 비슷한 코드로 따온 것을 보면 '천재 작곡가'로 불리며 오랜 기간 작업해온 사람으로서 선을 넘는 행위를 했다고 본다. 본인도 충분히 창작의 고통을 알텐데 너무 쉽게 남의 것을 가져올 때 죄책감이 전혀 없었을까. 더구나 그의 표절곡 거의 다수가 히트곡이 됐다. 
 
해당 논란은 원작자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법적 조치를 원하지 않으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하는 사건의 영역에선 벗어난 상태다. 그러나 꽤 오래전에 만들었던 곡부터 최근 곡까지 두루 표절 의혹이 나왔다는건 단순하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김태원은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가 얘기된 적이 없다. 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 때부터 다 넘어갔었다. 유희열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라며 "사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해도 작가로서 핑계가 될 순 없다. 근데 이런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면 별 게 아닌 거 같기도 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기도 했는데, 어디까지나 모방이 창작의 근원이 돼 새로운 형태로 변형됐을 때 해당되는 얘기다. 같은 걸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는 개념이 아닌, 영감을 받아 새로운 창작물을 재현하는 행위가 창조인 것이다. 과거 저명한 소설가 신경숙의 사례도 유사하다. 그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최단 기간 밀리언셀러가 되는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는데, 이후 표절 논란이 일면서 한순간에 신뢰를 잃었다. 그의 위상이 실추된 결정적 이유는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해명이 궁색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문단마저 그의 표절을 비판하지 않고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또 다른 문제가 됐다. 
 
대학시절 인상 깊게 봤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문득 떠오른다. 그중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를 겪고 있는 배우 윤정희가 김용택 시인의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거기서 '사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속 김용택 시인은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 보았나요? 천 번? 만 번? 백만 번? 아니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라며 "사과를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 사과를 보는 것입니다"라며 사과를 제대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창작의 시작이 관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던 장면 중 하나다. 관찰하고, 성찰하는 일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유희열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를 통한 사태 진화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 일이다. 
 
KBS 유희열 스케치북 장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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