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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저급한 혐오정치, 이제는 끝내야

2022-04-05 06:00

조회수 : 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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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최근 불거진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 제기에 대해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만을 드러내는, 민망할 만큼 저급한 정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비단 이 전 대표뿐만 아니라 많은 여권 인사들이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 제기에 대해 반발했다. 특히 탁현민 의전비서관은 “허락 없이 남의 옷장을 열면 안된다. 이게 상식이고 도덕이다”라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전 대표가 인용한 ‘저급’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내용, 성질, 품질 따위의 정도가 낮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저급’ 정치의 끝판왕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있었다. 바로 윤석열 당선인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쥴리” 의혹 제기였다. 
 
유튜브 방송인 <열린공감TV>가 과거 김건희 여사가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했다며 의혹을 제기하니,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TBS라디오 <뉴스 공장>에 1997년 ‘쥴리’라는 예명을 사용한 김건희 여사를 만났다는 사람을 불러서 방송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쥴리를 들어봤다'고 방송에서 말했고, 소위 진보 여성운동가로 불리던 고은광순씨는 “떡열아 용감하더구나…그러니 쥴리랑 사는 거겠지. 그래서 교수 부인에게 열등감 느낀 건희?”라고 SNS에 글을 올렸으며, 민중가수로 알려진 안치환씨는 ‘얼굴을 여러 번 바꾼 여인’, ‘이름도 여러 번 바꾼 여인’ 이라는 가사가 실린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발표했다. 유력 셀럽들이 돌아가며 신빙성도 없는, 아주 저급한, 혐오로 가득한 정치 행위를 한 셈이다. 
 
당시 “쥴리” 의혹을 제기한 셀럽들의 솔직한 심정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속내는 유흥주점에서 일했다는 '카더라 통신', 개명과 성형을 통해 과거를 숨긴다는 의혹을 통해 당시 윤석열 후보의 낙선을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쥴리”라는 그럴싸한 호칭을 붙여가며. 이 역시 정치적 표현의 자유나 풍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선후보 배우자는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당연히 언론의 검증대상이고, 국민의 알권리 대상이기도 하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경력부풀리기나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는 주가조작 의혹 등은 철저히 검증해서 유권자인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셀럽들은 대체 ‘쥴리’가 뭐길래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SNS에서 피를 토했나. 그것도 무려 25년 전에 목격했다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 특히 선거 과정에서 네거티브 공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만큼 네거티브는 유권자에게 즉각적인 효과를 낳는 효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쥴리’ 의혹 제기는 아주 저급했다. 불확실한 근거로 대선 후보 배우자를 유흥업소 접대부로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인 저열한 네거티브였다. 막상 대선이 끝난 현 시점에서는 ‘쥴리’를 꺼내 드는 셀럽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선이 끝났기 때문에 이젠 다른 먹이감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국민에게 혼란을 안겨주었음에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 그들에게는 그저 유권자들이 그들이 던지는 먹이감을 무는 개·돼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셈이다. 
 
우리 정치의 가장 커다란 축제인 대선 과정에서 ‘쥴리’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만큼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통합의 정치, 품격의 정치보다는 순간 확 달아오르는 먹이감을 지지자들에게 던지는 정치가 거리낌 없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어쩌면 한 달 후면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막중한 위치에 있게 될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가 연일 장애인 단체를 아무 주저함이 없이 공격하는 것도 저급의 정치, 혐오의 정치가 낳은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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