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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초원복집 판례' 뒤집혀…"식당주인 몰래 대화 녹음, 주거침입 아냐”

‘자사 비판 기사 쓴 기자 접대·녹음’ 회사 임직원 무죄

2022-03-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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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사실이 도청으로 드러난 일명 '초원복집 사건' 판례가 26년여만에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오후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간 경우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13명 중 다수 의견을 낸 11명의 대법관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각 음식점의 영업주로부터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들어간 이상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 등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려면 △출입 당시의 객관적·외형적 행위와 △주거 등의 형태와 용도·성질 △외부인에 대한 출입의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행위자의 출입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거주자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는지 여부에 따라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부연이다.
 
즉, 식당주인이 A씨 등의 출입 목적(녹음기 설치·제거)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겠지만 A씨 등의 행위로 인해 식당주인의 평온상태가 침해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들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별개 의견을 낸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다른 근거를 대면서도 최종 판단에선 같은 결론을 냈다. 이들은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이라는 의미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면서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침입 여부를 판단하더라도 거주자 의사에 반하는지를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삼아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영업주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으므로 기본적으로 영업주의 의사에 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운송업체 부사장인 A씨와 관리팀장 B씨는 2015년 자사에 대한 비판기사를 쓴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그가 부적절한 요구 등을 하는 장면을 확보하기 위해 음식점 내 녹음·녹화 장치를 식당 주인 몰래 설치·제거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들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 등이 식당 주인의 명시적·추정적 의사에 반해 식당에 침입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상 다른 사람 간의 대화 녹음을 허용하지 않는데 A씨 등이 자신들과 얘기를 나눈 기자와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고, 식당에 들어가는 행위도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날 대법 전합 판단으로 인해 1997년 '초원복집 사건'에 대한 판례는 변경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접전이 이어지던 1992년 12월 11일 벌어진 일이다.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그날 아침 부산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국'에 당시 부산시장, 부산경찰청장,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부산교육감, 부산지검장 등 기관장들을 불러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당시 이들의 자리에 통일국민당 측이 도청장치를 미리 설치해 대화 내용을 녹음한 뒤 이를 언론에 폭로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배경이다.
 
이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한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은 주거침입 혐의로 줄줄이 재판에 넘겨져 모두 벌금형을 확정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 선거운동을 적발하기 위한 도청이 이뤄진 것이라 해도 타인의 주거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행위는 수단과 방법의 타당성을 결여한 것이므로 정당행위가 아니다”라며 이들의 주거침입 혐의를 유죄로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대법원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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