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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법원 "차명계좌에 90% 과세 불가"… 금융위 해석 뒤집어

“차명계좌는 비실명 금융자산 아냐… 금융실명법상 근거 없어”

2021-12-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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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수사기관이나 금융당국 검사 등을 통해 사후 차명계좌로 드러난 비실명 금융자산에 대해 90% 차등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 금융위원회의 해석을 법원이 뒤집었다.
 
금융위 해석에 따를 경우 차등과세 대상이 지나치게 확장될 수 있고, 과세관청에 의한 선별적 과세가 이뤄질 수 있는 위험성, 과세요건 해석에 대해서는 조세법률주의에 따른 엄격 해석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김시철)는 23일 국민은행, 하나은행, 신영증권 등 금융사 6곳이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소득세징수처분 취소소송과 법인세 징수 취소소송 5건을 모두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5건의 소송 중 3건은 소득세, 2건은 법인세에 관한 사건으로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실소유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가 차명으로 보유한 계좌를 두고 제기된 사건이다.
 
재판부는 “조세법률주의가 요구하는 엄격해석의 원칙에 비춰 이 사건 각 계좌의 금융자산이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사건 조항은 원천징수 법인세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이와 다른 내용의 행정해석을 근거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엄격해석의 원칙이란 조세 법규를 유추하거나 확장 해석해 납세 의무를 확대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또한 “피고의 주장에 의하면 종중·동문회 등 ‘법인이 아닌 단체’ 총무가 회비를 자신의 계좌로 관리하는 경우, 배우자가 생활비에 사용할 목적으로 다른 배우자의 급여 계좌를 관리하는 경우, 공유부동산을 임대하면서 공유자 1인의 계좌로 임대보증금을 받아 관리한 경우, 보이스피싱에 속아 제3자의 계좌에 송금한 경우 등 일상생활에서 불법적인 목적 없이 이뤄지는 다수의 차명계좌도 차등세율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기관으로서는 계좌개설 시점뿐만 아니라 금융거래 과정에서도 실체적 권리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차명거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는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 의한 계속거래의 경우 실명을 확인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한 금융실명법 제3조 제2항 제1호의 규정 취지에 반한다”며 “대량적·반복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특성상 신속하고 정형적으로 처리될 것이 요구되는 실제 금융거래의 규준이나 실상에도 어긋난다”고 봤다.
 
금융실명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5조는 ‘실명에 의하지 않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90%)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금융위 등은 당초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개설된 차명계좌의 경우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으나 2017년 다른 해석을 내놨다.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금융감독원 검사 등에 의해 사후적으로 ‘차명계좌’라는 게 밝혀지면 해당 계좌에 보유한 금융자산이 금융실명법 제5조의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금융위 해석이 바뀐 것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차등 세율 90%를 적용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국감에서 이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에서 확인된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지 않아 세금과 과징금을 회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피고들(각 관할 세무서들)은 이 같은 금융위 해석을 근거로 2018년 이후 금융사들에게 차명계좌 금융자산에서 발생한 이자·배당 소득에 대한 90%의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원천징수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5곳의 금융사들은 불복해 각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계좌의 금융자산이 이 사건 조항의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대부분 금융사 측 손을 들어줬다. 다만, 신영증권이 낸 소송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금융자산이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한다고 보고 영등포세무서 측 손을 들어줬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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