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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눈')공정위, 해운사 과징금 부과 신중해야

2021-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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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해운사들이 불법 담합했다며 총 8000억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업계가 시끄럽다. 해운사들은 해운법에 따라 '운임 공동행위'를 한 것이니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공정위는 취지가 무엇이었든 간에 공정거래법에 따라 원칙대로 사안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 20일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는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며 "화주나 소비자들에 대한 피해를 막는 것이 공정위가 담합을 제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담합은 3년 전의 일이다. 2018년 9월 목재합판유통협회는 해운사들이 한국~동남아 노선에서 운임을 담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공정위는 혐의가 인정된다며 올해 5월 국내 12개 해운사와 해외 11개 선사에 과징금을 부여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통보했다. 이중 국내 선사 과징금 규모는 56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해운업계는 연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문제 삼는 건 담합 자체보다는 절차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운사들은 운임 공동행위 시 이를 해양수산부에 신고해야 하는데 공정위는 122차례에 걸쳐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화주 피해가 우려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앞서 신고한 운임보다 낮아 대상이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바꿔 생각하면 담합을 하고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이하로 운임을 책정해야 했던 해운업계 사정을 고려한다면, 수천억원대 과징금 조치는 과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운임이 급격히 올라 해운사들의 수익성이 커졌지만, 이전에는 한정된 물량을 나눠 가지면서 가격 경쟁을 하는 구조였다. 특히 거대 글로벌 선사들이 저가 운임을 남발하면서 규모가 작은 해운사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해운업은 선박을 들여와야 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유류비 등 고정비 지출도 큰 산업이다. 여기에 만약 출혈 경쟁까지 이어진다면 결국 힘이 센 해운사들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운임이 오히려 더 뛸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가격 공동행위는 인정됐다. 주관 부처인 해양수산부 또한 이번 담합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아울러 한국~동남아 노선의 경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선사들이 주로 운영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과징금 조치로 덩치가 큰 곳보다 작은 업체들의 피해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운임 상승으로 이제 겨우 살만해진 중소 해운사들을 또 한번 궁지로 모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원칙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담합 자체의 위법성보다는 제대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절차상 미비'를 문제 삼았다는 건 근거가 약해 보인다.
 
해수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규정과 제도가 모호하면 결국 그 피해는 해운사와 화주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 제도를 다듬어 앞으로는 이런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 상황이 바뀌었고 주요국 중에는 해운사 가격 담합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곳도 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계속해서 이를 허용해줄지도 고민해야 한다.
 
김지영 산업1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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