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정영학 판도라', 법원에서도 통할까

수사 '밑그림'은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녹취록

2021-10-14 12:00

조회수 : 2,51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건의 밑그림으로 삼은 '정영학 녹취파일'의 신빙성이 법원에서도 통할지 관심이 쏠린다.
 
문성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0시30분부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이 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특가법상 뇌물과 횡령·배임죄다. 사업 참여와 수익 배분과 관련해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5억을 건네고, 회삿돈 473억원을 빌린 뒤 제대로 갚지 않은 혐의다.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동규 배임공모·곽상도 뇌물 혐의도
 
유 전 본부장이 화천대유를 비롯한 민간사업자에게 막대한 수익을 몰아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1100억대 손해를 입혔다는 업무상배임의 공범 혐의도 받고 있다. 화천대유에서 6년간 대리로 근무한 곽상도 무소속 의원 아들에게 준 퇴직금 50억원도 곽 의원에 대한 사후뇌물죄로 추가됐다
 
김씨와 앞서 구속된 유 전 본부장에 대한 혐의 구성의 기초는 정영학 회계사 측이 지난달 27일 검찰에 제출한 19개의 녹음·녹취파일이다. 일명 '정영학 판도라'다. 검찰은 이 증거물들을 토대로 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유 전 본부장까지 구속되면서 '정영학 판도라'의 신빙성은 더 굳어졌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13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계사가 녹음을 시작했다는 계기와 시점이 차이가 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정 회계사는 2019년 대장동 사업 수익 지분을 놓고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따귀를 맞은 뒤부터 모멸감을 느껴 증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천화동인4호 실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다른 말을 했다. 유 전 본부장에게 따귀를 맞은 때는 2014년이라는 것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2019년 3월6일 경기관광공사 사장 재직 당시 경기도청 구관 2층 브리핑룸에서 '임진각~판문점 간 평화 모노레일 설치 추진 계획'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뉴시스)
 
"유동규가 술집 찾아와 다짜고짜 '따귀'"
 
지난 1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유동규 본부장이 술집을 찾아와서 다짜고짜 '너희들은 배신자야' 이러더니 정영학 회계사 따귀를 두 대 때리더라"며 "저도 한 대 맞았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날 상황을 잘 아는 한 인물은 "유 전 본부장은 사업 도와준다고 온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가 이익을 챙겼다며 유 전 본부장이 화가 많이 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도, 아니 사업자가 사업하는데 왜 유 전 본부장에게 그걸 알려야 하고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었고 본인도 그거에 응어리가 있었던 걸로...(안다)"며 정 회계사가 녹취록을 만든 계기를 당시 사건으로 기억했다.
 
김씨도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 전 본부장이 정 회계사를 폭행한 시기가 2014년 3~4월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술집에서 술에 취한 유 전 본부장이 '정영학, 이XX야 도와달라고 했더니 지분을 가지냐'라며 뺨을 때렸다는 것이다. 남 변호사도 한대 맞았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남 변호사와 김씨의 진술이 일치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남 변호사·정 회계사와 김씨는 갈등 관계이다.
 
남 변호사가 언급한 당시는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즈음이다. 이때는 대장동 개발사업이 윤곽만 잡혔을 시기다. 다음 해인 2015년 2월13일 성남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사업 민간사업자 공모가 공고됐다.
 
천화동인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지난 12일 JTBC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JTBC화면 캡쳐
 
대장동 민간공모는 2015년 2월
 
'정 회계사 녹취록'과 남 변호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50억 약속그룹'과 '유동규 700억 배당' 의혹을 두고도 김씨 측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사업 진행과정에서 사용한 자금을 김씨와 정 회계사, 남 변호사가 공동 부담하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는 과정에서 이른바 '블러핑'이 있었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다.
 
각자 배당금에서 공동부담금을 내지 않으려고 다퉜고 '나도 돈 들어갈 데가 많다'며 '블러핑' 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유동규 700억 배당' 운운한 것에 대해 '농담처럼 말했다'고 해명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남 변호사도 인터뷰에서 "(김씨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비용을. 저희(정영학·남욱)한테 많이 갖고 가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김씨 측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정 회계사의 녹음·녹취록의 신빙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검찰이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포인트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김씨 측 변호인단은 "검찰이 소환 조사에서 피의자와 변호인의 강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주된 증거라는 녹취록을 제시하거나 녹음을 들려 주지 않고 조사를 진행했다"며 "법률상 보장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뇌물' 공범 유동규 이미 구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다른 혐의는 차치하더라도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유 전 본부장이 이미 구속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영장심사에서 주목되는 법원 판단은 유 전 본부장의 업무상배임에 대한 공모 혐의와 곽 의원에 대한 사후뇌물죄 부분이다. 김씨의 회삿돈 횡령 부분은 '정영학 판도라'와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영장전담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정 회계사가 제출한 증거물들의 신빙성 문제는, 영장실질심사 단계 보다 기소 후 본격적 공판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다만, 검찰이 녹취록 등과 일치 또는 뒷받침할 수 있는 물증을 얼마나 확보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녹음·녹취파일에 필적하는 물증을 어느정도 확보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