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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배터리 소송 후폭풍, LG-SK 이직 길 막혔다

재계 관계자 "채용시 LG엔솔 출신 안 뽑기로"

2021-10-0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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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 LG에너지솔루션에 근무 중인 A 씨는 최근 SK이노베이션 경력직 채용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채용 공고대로 모집 분야의 3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직자 채용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SK온(분사 전 SK이노베이션(096770))이 인력 채용 시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051910)) 출신 인원은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사가 배터리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지만 2년간 깊어진 골에 불똥이 애먼 곳으로 튄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기술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인력 이동이 제한된 만큼 핵심 인재의 해외 유출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SK는 배터리 소송 이후 내부적으로 경력직 채용 시 LG 출신은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뉴시스
 
양사 간의 소송은 LG엔솔이 지난 2019년 4월 '영업비밀 침해'로 SK이노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LG엔솔은 도를 넘은 인력 빼가기로 핵심 기술이 다량으로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SK이노 측은 공정한 경력직 채용이었다고 반박했다. 세기의 배터리 소송이라 불리며 2년 간 지속된 양사의 소송은 SK이노가 LG엔솔에 2조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관련 기사: LG-SK, 미 ITC 배터리 분쟁 종결…합의금 2조원)
 
SK가 LG 출신을 배제하기로 한 것은 경쟁사로서 양사 간 분쟁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양사는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을 이어가지 않기로 합의했다. SK이노는 지난 2분기 LG엔솔에 합의금 2조원 중 1조원을 이미 지급했다. 남은 1조원은 로열티로 2023년 이후 지급한다. 
 
재계 관계자는 "배상금까지 지불한 마당에 소송 관련 오해나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는 SK도 LG 출신을 영입하기 조심스러울 것"이라며 "업계마다 퇴직 시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를 요구하지만 인력 이동이 소송전까지 번지면서 국내 배터리 산업 이직이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엔솔 일부 직원들은 이직 길이 막힌 것을 두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에도 소송으로 동종 업계 이직으로 커리어를 쌓는 것이 원천적으로 막혔다는 반응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이노의 평균 연봉은 1억300만원으로 3사 중 가장 높았다. LG화학은 9300만원, 삼성SDI(006400)는 8300만원을 기록했다.
 
SK이노가 채용 시 특정 회사 출신을 배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채용 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정 근로자의 채용을 강요하거나 서류에 개인정보(신체, 용모, 키, 체중, 출신 지역 등등) 기재하지 못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채용 시 사용자나 인사권자 재량이 폭 넓게 인정되는 만큼 특정 회사·학교 출신을 배제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SK이노 관계자는 "채용 조건에 맞게 역량을 갖추고 향후 회사의 성장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인재들을 위주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선발할 계획"이라며 "특정 회사 출신을 배제하거나 채용에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의 인력이동이 일부 제한된 상황에 배터리 인재들의 해외 유출 우려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바람까지 더해지며 인재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폭스바겐과 손잡은 스웨덴 전지 회사 노스볼트에는 최소 5~15년 경력의 LG와 삼성 출신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스볼트는 홈페이지에 약 30명 이상의 한국·일본인 기술자들이 자사 배터리 기술 로드맵 구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홍보했다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배터리 인력 충원을 위해 3사도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LG엔솔은 고려대와 손잡고 배터리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배터리-스마트팩토리학과’를 개설했다. 등록금과 생활비 지원으로 자체적인 핵심인력 양성에 나서는 것이다. 지난달 LG화학과 SK이노 임원들은 직접 미국에서 글로벌 인재 영입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SDI는 하반기 공채에 더해 중대형 전지 사업부 등 5개 분야 경력 사원을 수시 채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차전지 연구인력은 현장 수요 대비 석박사급 연구·설계인력은 1013명, 학사급 공정인력은 1810명 부족하다. 정부는 '2030 이차전지 산업 발전 전략'에 따라 매년 1100여명에 달하는 배터리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석·박사급 인력을 현재 50명 수준에서 내년 150명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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