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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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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무분별한 인증, 중소기업에 '계륵'이다

2021-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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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마다 사무실이나 회의실에 들어서면 벽에 각종 인증서나 인허가증이 걸려있다. 이러한 인증은 중소기업에 대외인지도나 신뢰도를 높이면서 브랜드로써의 역할을 하고, 정부조달이나 지원사업에서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그러나 인증이 중소기업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증이 과도하게 남발되거나 반 강제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중소기업에 계륵(鷄肋)이 되고 있다. 계륵은 닭의 갈비부위를 일컫는 말이다. 뼈는 얼기설기 많지만 살은 별로 붙어 있지 않은 부분이다. 일상적으로 취하기는 이익이 그다지 없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빗대는 말로 쓰인다. 
 
얼마 전 어느 부처에서 각종 브랜드를 가진 기업을 모아 ‘00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바 있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의 52개에 달하는 ‘인증·선정·선도·강소·우수·친화·스타’등의 수식어가 붙은 기업을 통칭한 것이다. 해당기업만도 1만 6천여 개에 달해 10인 이상 제조업체 7만여 개의 23%가 해당된다. 그다지 변별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이 기업 브랜드를 획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더욱이 이들의 80%가 50인 이하로 영세하다. 신청-접수-심사-선정의 절차를 거치며 적잖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이처럼 인증이나 브랜드는 중소기업에게 혜택 못지않게 시간과 노력, 비용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즉 과도한 공급자 중심의 인증시장에서 중소기업은 ‘울며 겨자 먹는 식’의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중소기업은 이를 규제의 일환으로 인식해 정리해달라고 호소하지만 정부나 인증기관은 이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인증을 획득한다며 외면하고 있다.  나아가 인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거나 인증기관의 들러리를 서면서 지원사업에서 인증에 가점을 주는 등 일종의 인증공급자중심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인증이나 브랜드는 상호 연계돼 있다. 예를 들면 A라는 인증을 받으면 B인증에서 가점을 주고, B라는 인증을 받으려면 또 다른 C라는 인증을 받아야 가점을 받는다. 특정인증은 정부자금지원이나 조달, 포상, 허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중소기업의 인증비용도 만만치 않아 하나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인허가나 인증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문서작업을 해야 하는데 전문적인 인력도 없거니와 문서의 양이나 내용이 감당하기 어려워 자료준비조차 하기 벅찬 실정이다. 결국 고액의 과외를 받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강제성을 띤 규제의 경우는 아예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법이나 규정을 내세워 전문민간업체에 컨설팅을 받도록 유도함으로써 관민이 밀고 당기며 중소기업에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직접 하던 일을 민간에 위탁하면서도 담당 공무원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단체에서도 정부에 이러한 인증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영자들도 정부의 규제성 인허가나 반 강제 또는 반 강매의 인증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남들 하는데 나만 안하면 결과적으로 불이익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인증을 받으면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불이익을 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다한 유사중복 인증의 성행은 공급자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때문인 듯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인증생태계에 정부가 온갖 잡다한 시혜를 베푼다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제품의 시험이나 인증을 하는 기관은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올리지만, 정작 이에 참여하는 기업은 대부분 영세하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개선방안이 요구된다. 
 
정부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제조업의 부담을 감안해 그간 유사중복인증의 폐해를 인지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매번 용두사미로 끝나곤 했다. 오히려 인증기준을 완화하거나 정부가 하던 인증을 민간에 떠넘겨 비용부담만 가중시키면서 인증기관의 돈벌이를 밀어주는 우(愚)를 범하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인증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가 그간 촘촘히 연결된 인증의 먹이사슬을 단칼에 통폐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진정 중소기업의 육성과 애로사항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과감하게 ‘중소기업의 편’에 서서 과도한 인증을 축소·폐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소벤처기업이 고용과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단체들도 인증사업에 편승하지 말고 과감하게 앞장서야 한다.   
 
이의준 사단법인 한국키움경제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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