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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영업점서도 신변 위협 받지만…"그만큼 연봉 받잖아" 시선도

노동연구소, 업무고충 사례 인터뷰…콜센터 없어 고객불만 직접 감당…회사 윗선은 나 몰라라

2021-04-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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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우연수·신송희 기자] 증권사 직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으로는 과중한 성과 압박과 업무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가 꼽힌다. 다만 최근 10년새 고객 민원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한 점이 눈길을 끈다. 
 
19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노동연구소)의 '사무금융노동자 업무 정신질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증권업에 종소하는 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신변을 위협을 느끼는 등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증권사 직원 A씨는 노동연구소와의 심층면접에서 "칼만 안 맞을 뿐,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적이 있다"며 "결국 협박에 못이겨 고객에게 사비로 거액의 손실 금액을 물어줬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선 이런 보고를 좋지 않게 받아들여 윗선에 보고하기도 어렵다"며 "큰 소리나지 않게 친절히 사과하는 것까지 성과 압박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고 했다.
  
다른 증권사 직원 B씨는 "회사가 '우리가 사후관리 할테니 영업만 열심히 하라'는 믿음을 주지 않으니 상품을 팔아도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사후 문제가 발생한 것 같은 금융상품은 판매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이어 그는 "제조업은 개발과 판매, AS가 각기 다른 업무로 구분돼 상품에 대한 항의는 콜센터로 가는데, 금융상품은 판매·관리·AS의 책임이 모두 상품 판매자에게 있다"며 "24시간 받고 있는 스트테스를 풀기 위해 가장 쉽게 찾는 게 술과 수면제"라고 했다. 노동연구소는 "증권업 자체에 내재한 리스크를 개별 노동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노동자들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았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주식 거래 확대로 직원 수는 줄고 있는데 야간근무 등 업무 강도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증권사 직원 C씨는 "미국장, 한국장, 중국장, 홍콩장까지 함께 봐야해 사실상 24시간 근무체제로 돌아가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어 "(장시간 근무에도 불구하고)회사에서는 야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내가 원해서, 성과급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점포 통폐합으로 지점 수가 줄어들면서 이에 따른 고충도 터져나온다. 최근 한 증권사 직원은 "공모주 대란으로 하루 20~30명 오는 지점에 300명 가까이 몰린 적이 있다"며 "당시 직원들은 '내가 기다리는데 왜 자리를 비우느냐'는 고객 원성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불완전 판매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직원이 챙겨야 한다. 불완전 판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판매에 앞서 녹취 및 동의 등 필수 절차를 밝는 식이다. 금소법 시행 이전보다 매매 계약 체결에 시간이  곱절 소요되면서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들도 있다는 전언이다. 
 
고객 민원 평가를 상당분 반영하는 직원성가평가(KPI) 제도 손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사 영업직 관계자는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일을 당해도 먼저 사과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면서 “고객의 민원이 성과 평가에 직결되기 때문에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KPI가 인사고과에 직결되는 증권사의 경우 직원들의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고객 자산관리에 집중된 증권사의 경우 영업사원은 KPI 점수로 승진이 결정될 수 있다”면서 “고객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고객 평가가 자신의 승진으로 직결될 경우 지나치게 갑과 을의 관계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노동연구소는 회사 내부에서도 노동자 정신질환 문제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인터뷰를 통해 '직업적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월급에 포함돼있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노동연구소는 회사별로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체계를 수립하고 감정노동과 고객 폭력에 대해 조직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민병덕 의원은 지난 1일 금융사 고객 응대 직원에 대한 보호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회사가 노동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대해 치료나 상담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사무금융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에 참여한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은 "금융산업에서 온전히 보호되고 있는 건 금융기관의 리스크"라며 "금융상품 리스크가 기업이 아니라 고객과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도록 해 기업의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나마 고객들에 대해서는 불완전판매 상품에 대해 직원이 민사적 책임이라도 지고 있으나, 노동자들의 위험에 대해선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우연수·신송희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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