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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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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돈보다 중요한 건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경험

2021-02-21 07:00

조회수 : 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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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가동 중단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개성공단 기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희망찬 이야기가 오갔지만. 개별적으로 만난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지쳤다고 했다. 대개, 40-50대에 개성공단에 들어가기 시작해 십여년 넘게 청춘을 바친 곳.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들이 선택했던 개성공단은 그렇게 그들을 배신하고, 5년째 굳게 닫혀있다. 50~60대가 되어버린 그들은 이제 힘이 없다. 5년간 밀린 이자와 원금, 또 거래기업에 대해 배상하느라 빚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인들 중 상당수가 폐업이나 휴업상태다. 그냥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정기섭(왼쪽 두번째)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기업 대표들이 9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성공단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인건비가 싸고, 양질의 노동력에, 말이 통하는 기술자들, 또 서울과 가까워 산업적으로 대단한 이점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 노동집약형 산업에 속해 그때그때 주문을 받아 하루이틀만에 만들어 서울로 가져와 팔았다고 한다. 거리도 가깝고, 고숙련의 노동자들로 만든 물품의 경쟁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자리잡은 일부 기업인들은 개성공단이 그립다고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2013년 6개월간 문이 닫혔을 때 겨우겨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보니 북한 노동자들은 얼굴이 까매져있고, 볼이 쏙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도 마음고생했던 것이다. 남한 사장님들에게만 공단이 이로운 것이 아니었다. 북한 노동자들에게도 개성공단은 남한 문화를 경험하고, 기술력도 쌓을 수 있는 첨단 노동현장이었다. 북한에서 개성공단에 다닌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비유도 들었다. 
 
각 공장마다 샤워실을 구비하고 순번을 정해서 샤워를 할 수 있게 하고 간식시간에는 초코파이, 식사시간에는 따뜻한 밥과 국을, 출퇴근시엔 통근버스를 제공했다. 영양상태가 좋지 못해 건강상태가 나쁜 이들이 많아 결근도 잦은 그들에게 공단은 일하는 현장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개성공단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물론 부침이 많았지만) 남북통일에 토대가 되고 기여가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남과 북이 한 현장에서 일하고 숨쉬고 떠들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를 접하고 스며들며 동화될 수 있다는 사실, 또 한 민족이 서로의 장점을 가지고 뭉침으로써 남한에서 사양산업이라 여겼던 노동집약형 산업이 시너지를 내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몸소 느꼈다고 한다. 이 다음에 우리나라에 통일같은 좋은 일이 생긴다면 개성공단이 그 초석이 됐을 것이라는, 그런 자부심을 가졌다고 했다. 
 
개성공단에서 근무했던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속상해하고, 돌아가고 싶어했다. '법인장님, 걱정 말고 가 계세요. 저희가 기계들 잘 지킬게요'라고 그들을 안심시켰던 북한 노동자들이 보고싶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언니들, 동무들이 그립다고 했다. 
 
정치논리에, 이념논리에 갇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개성공단. 부디 지금의 고비를 잘 넘겨 결국엔 남북 문화 교류, 산업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통일은 먼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와 내가 남과 북에 사는 사람이 아닌, 그냥 일하는 동료로 만나 웃고 떠들고 한마음이 되어 일한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어 남북한의 문화를 서로 겪고 동화하고 감화한다면, 당장 통일국가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렇게 1년, 2년... 10년, 20년이 지나고 개성공단같은 산업단지가 남북한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서로를 하나라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자연스럽게 오지 않을까.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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