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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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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그래서 검찰개혁은 이제 끝났는가

2021-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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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입법화는 개혁의 완성이 아니다. 입법화는 법률로 "뭘 어떻게 하겠다"거나 "여지껏 이렇게 해온 것을 앞으로는 하지 못한다"고 명시적으로 못 박는 일이다. 개혁에서 입법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법률을 만들고 기구를 바꾼다고 개혁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혁명이나 개혁의 최종 목적지는 의식의 변화다. 의식을 바꾸지 못하면, 법을 고쳤더라도 실제 운용면에서 입법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원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불가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뒤 적어도 언론에서는 검찰개혁이 담론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과연 검찰개혁은 완성된 것인가. 절대, 그리고 전혀 그렇지 않다. 검찰개혁이 윤 총장의 자리 박탈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동안 나라를 들었다놨다 했던 사안이 법원 결정으로 흐지부지된다면 여러 방면에서 잘못된 것이다. 검찰개혁은 비정상의 정상화이자, 검찰을 국민 통제 하에 두는 것이 핵심이며, 그 점은 윤 총장 재직 여부와 무관하게 여전히 유효하다. 검찰의 평소 생각과 의식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검찰총장이 누구건 간에 검찰권한남용으로 초래된 문제는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완료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검찰의 특권의식·엘리트의식을 고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일환으로 검찰권한을 쪼개 분산하고, 업무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1월말, 당시 조남관 검찰총장직무대행이 법무장관에게 쓴 편지 한 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하도 많은 일이 벌어진 탓에, 한 달 전 편지를 거론하는 게 고리짝 속 옛날 얘기로 여겨지리라는 점,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필자가 그 편지를 꺼내드는 이유는, 검사들 뼛속 깊이 박힌 사고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그간의 개혁작업은 무망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굳이 비트겐슈타인을 빌지 않더라도 말과 글은 의식의 반영이고, 의식은 사유체계의 소산이다. 조 대행의 편지는 "검찰개혁의 대의를 위해 장관님, 한 발만 물러나 주십시오!"로 시작해서, "검찰개혁은 검찰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얻지 않고, 개혁 대상으로만 삼아서는 아무리 좋은 법령과 제도도 공염불이 될 것입니다. (중략) 검찰개혁의 꿈은 검사들에게 희화화되어 아무런 동력도 얻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편지 수신자가 법무장관이므로 필자에게 답신권은 없지만, 국가적 사안이니 조 대행에게 공개질의한다. 총장권한대행 입장에서 고민이 크리라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검찰의 마음을 얻으라"니요. 검찰개혁은 '검찰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국민 마음'을 얻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검찰이 국민 마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찾아 제시해야 할 때 아닙니까. 개혁 대상의 마음에 들게 개혁하는 게 어떻게 개혁입니까. 개혁이 검찰 승인사항입니까.
 
개혁은 검사들과 흥정하듯 상의해서 하는 게 아니다. 김학의사건 때나 진경준사건,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때 검찰이 저지른 짓을 벌써 잊었는가. 그 사건 때 구체적이고도 확실하게 사과하고, 관련 검사들 처벌했던가. 깔아뭉갰다가 여론에 떼밀려 마지못해 재수사에 나섰으나, 깔고뭉개는 사이 공소시효가 끝나버려 겨우 뇌물죄로 처벌하지 않았는가. 김학의씨 얼굴은 같이 근무했던 검사들이 더 잘 알 거 아닌가. 그 명석하다는 검사들이 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가. 처음부터 제대로 했으면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함에도 "검찰의 마음을 얻으라"니! 이게 검찰의 사고방식이다.
 
면전에서 "영감님, 검사님…"하며 머리 조아리고 사정하는 사람들만 봐오다 보니, 사람 망가뜨리기도 덮어줄 수도 있는 처분권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쥐어져있다 보니, 우월의식과 선민의식 밖에 남은 건 아닌가. 검찰은 마땅히 했어야 할 사과를 아직도 안하고 있다. 사과를 수치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국민 신임을 잃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보여, 딱하기 짝이 없다. 실수했으면 진정성 느껴지게 사과하고, 상응 조치를 취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국민이 검찰에게 위임한 권한이 진정한 권한이 되고, 권위가 선다.
 
30년 경력의 검사에게 이런 '기본'을 말하는 게 유감이다. 검사 같은 권력자들이 즐겨 쓰는 그 '두루뭉실한 유감' 말고, 진짜로 유감스럽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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