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 20화)바이칼에 쌓인 사연들
입력 : 2020-02-10 08:00:00 수정 : 2020-02-10 08:00:00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스투파 주위에는 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동전들이 많이 놓여 있다. 사진/필자 제공
 
야생과 인공 그리고 탐욕
 
바다 같은 바이칼 위, 부정 타지 않은 깨끗한 섬 오고이에 건설된 하얀 스투파(탑)가 저물기 직전의 해를 이고 고즈넉이 서 있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왜 감흥이 그다지 없었던 것일까? 고승과 샤만, 러시아 정교의 수장까지 와서 축하하고 경전과 다양한 귀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는데, 나의 편견 때문인가... ‘관광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스투파에게서 감동을 앗아간다. 
 
잿빛으로 뿌연 바이칼과 너무나 상업화된 알혼 섬의 인상이 이 스투파에까지 이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2005년도에 세워진 최신 탑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세월의 이끼가 낀 자연스러움이 아쉬워서일까? 그러나 이 탑도 수백 년이 흐르면 후세대들에게 유물이 될 것이다. 게다가 나 역시 알혼 섬의 상업화에 일조하는 수많은 여행객들 중 한 명이지 않은가.
 
오고이 섬의 아래쪽에는 '성스러운 샘'으로 불리는 물이 있는데 광물질이 많다고 한다. 사진/필자 제공
 
다음날 베라 씨의 남편인 니꼴라이(꼴랴) 가랴치니코프 씨가 운전하는 북부 투어 차에 올랐다. 동승자들이 모두 러시아인 가족들이다. 꼴랴 씨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러시아인 동승자들은 조용하다. “어제는 한국인 세 명, 몽골인 한 명과 즐겁게 얘기하면서 갔지요.” 꼴랴 씨는 이 조용한 분위기가 좀 아쉬운 듯한 눈치다. 조수석에 앉은 내가 질문을 거의 독점하게 됐다. 
 
“멀리서 난 화재 때문에 여기도 3일째 연기에 싸여 있어요.” 고의적인 방화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담뱃불이나 라이터에 의한 실화(失火)를 언급한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한, 2019년 9월에 시작돼 2002년 2월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은 호주 산불, 그 주원인으로 지목된 기후 변화 역시 시베리아 산불의 원인일 것이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런데 언론 기사들 중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보인다. 그 하나는 푸틴 대통령의 국가 산림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2006년부터 적용된 새로운 산림법이 수익성을 중시해 산림 보호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산림경비원의 수가 대폭 줄고 시베리아에 불법 벌채와 산불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방화에 대한 의혹이다. 불법 삼림 벌채를 숨기기 위해 방화를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불을 질러 훼손된 숲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벌목을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즉, 도시나 도로에서 가까운 숲,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삼림의 벌채에 대한 입찰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자행되는 방화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시베리아 산불의 주원인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범죄 사건들이 여러 차례 보도되고 있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알혼 섬에서 만난 굴락의 흔적
 
본업이 스쿨버스 기사인 꼴랴 씨는 1989년에서 1991년까지 라트비아 소련군에 복무했다. 교사인 그의 아내 베라 씨는 1987년생이라 소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던 격동기를 잘 모르지만, 남편에게서 들은 얘기라며 1991년 라트비아에서 그가 겪었던 상황을 전해 준다. 제대를 코앞에 두고 있던 군인 꼴랴는 반러시아 정서가 고조된 라트비아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돌아다녀야 했고 민간인 번호를 받아 민간인 형식으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내가 겪었던 1992년의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북부 투어 코스의 모든 차량들처럼 우리 차도 부랴트족의 샤머니즘 신화와 전설이 깃든 장소들에 멈춰 서고, 러시아인 가족들과 나는 꼴랴 씨의 설명을 듣는다. 예를 들어, 부랴트어로 ‘하얀 곶’이라는 뜻을 가진 ‘사간 후슌’은 일명 ‘삼형제 바위’로 불리는데, 그 전설은 이렇다(물론, 대부분의 전설들이 그러하듯, 다른 버전들도 있다). 한 샤먼에게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이 다른 씨족의 청년과 사랑에 빠져 도망갔다. 샤먼은 딸을 찾으러 세 아들을 보냈고 아들들은 누이를 찾았지만 그녀가 눈물로 읍소하자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누이를 못 찾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후에 진실을 알게 된 샤먼이 크게 노해 이 세 아들을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사간 후슌(하얀 곶), 샤먼 가족의 전설이 담긴 일명 '삼형제 바위'가 사라진 수평선 앞에 보인다. 사진/필자 제공
 
그러나 바이칼과 알혼에 깃든 샤머니즘의 신비로운 기운을 받기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았고 연기와 안개가 심했다. 그보다 나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우로치셰 삐샨노예’(모래 경계길)라 불리는 곳에서 만난 ‘굴락’(교화/강제노동수용소)의 흔적이다. 섬의 서쪽 해안, 하얀 모래밭이 보이고 붉은 빛 모래 언덕이 나란히 놓인 이 지역에 굴락이 있었다. 그곳 유형자들의 다수가 리투아니아인과 라트비아인이었다고 베라 씨가 말했었다. 193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삐샨노예의 굴락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 외에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독일, 폴란드, 타타르 등 소련 곳곳에서 유형자들이 보내져 바이칼의 물고기 ‘오물’을 잡고 배로 실어 나르고 통조림 공장에서 가공하면서 막사 생활을 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한다면 꼴랴 씨의 군대 생활 막바지 일화가 납득이 갈 수밖에 없겠다. 
 
삐샨노예에서 꼴랴 씨가 이제는 터만 남아 있는 굴락의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이르쿠츠크 주에서 발행되는 주간 신문 <동시베리아의 진실>의 한 기사는 리투아니아 최고평의회 의장과 입법부 세이마스의 의장을 역임했던 비토터스 란즈베르기스의 아내이자 음악가인 그라쥐나 루치쩨-란즈베르게네가 유형자인 부모와 함께 알혼 섬에 살았던 것을 밝히고 있다. 그녀가 훗날 후지르 향토박물관에 보낸 편지에는 “알혼으로 유형 당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비록 가혹하지만, 위안이 되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한다(2018년 10월 23일자 48호).
 
같은 기사에 따르면, 이 박물관 설립자의 딸이자 전 박물관장인 까삐똘리나 리트비노바는 당시 부랴트, 러시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타타르 등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는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친절했으며 상이한 민족들의 아이들 간에 어떤 차이도 없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리투아니아 코너가 있는데, 전시품 중 하나인 책 <바이칼의 어부>에는 이 책의 저자로 유형자였던 리투아니아인 가톨릭 사제 빈짜스 프란스카이찌스가 쓴 구절이 전해진다. “오직  바이칼 호수의 아름다움만이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삐샨노예에 남아 있는 한 가족이 미니 박물관 '어부의 집'을 열어 수공예 기념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마마 마을에서 온 스베따 씨
 
동승자였던 러시아인 세 가족들 간의 대화는 간간이 늘어나 투어에서 마을로 돌아올 때쯤엔 몇 마디씩 주고받고 웃음소리도 들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온 친절한 커플 마샤와 싸샤 씨와는 수다를 좀 떨었다. 알혼 섬을 거의 매년 찾는다는 이 커플은 알혼 섬이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으로 올 때 함께 버스를 탔던 가족도 했던 말이다. 그들도 오래전부터 매년 알혼 섬을 방문하는 단골 여행자들이다. 전기가 들어온 지도 몇 년 안됐을 정도로 고립된 유형지였던 이곳이 이제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바이칼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 어쩌랴. 러시아 정부가 지역 경제와 자연 환경을 둘 다 살리는 정책으로 대처하길 기대할 수밖에. 
 
알혼 섬 최북단 호보이 곶(부랴트어로 '송곳니'라는 뜻)이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사진/필자 제공
 
아르바이트로 투어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베라 씨의 부스 옆에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스베뜰라나(스베따) 까라쏘바 씨는 이르쿠츠크 주 북동쪽 북바이칼 고원인 맘스커-추이스키 지구의 마마 마을에서 왔다. 그녀는 캠핑카를 배로 실어 나르고 다시 그 차를 운전해 알혼 섬의 후지르 마을까지 온 것이다. 그 역시 여름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다. 
 
그녀는 작은 공간을 빌려 음식을 만들고 임시 거처로 쓰면서 바깥에는 테이블을 몇 개 놓아 손님을 맞는다. 주방 건물 외벽에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가 그려진 광고 그림이 붙어 있다. 동력공학을 전공하고 직장까지 다니다가 그림으로 전공을 바꾼 25세 부랴트 여성이 그려 주었다고 한다. 나는 스베따 씨가 만들어 준 식사를 한 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스베따 씨가 멀리 떨어진 이르쿠츠크 북동쪽의 마마 마을에서 배로 실어온 캠핑카. 그녀는 장사와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과 음식 재료들을 가져왔다. 사진/필자 제공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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