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 19화)사라진 수평선, 바이칼에서 만난 사람들
입력 : 2020-02-03 08:00:00 수정 : 2020-02-03 15:34:07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알혼 섬으로 드나드는 차량과 승객들을 배들이 쉴 새 없이 실어나르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부끄러운 기억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널에서 알혼 섬의 중심 마을인 후지르로 가는 길, 휴게소에 들르기 위해 잠시 정차했을 때 미니버스 운전기사인 아유르 씨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숙취 후유증으로 옆 좌석 승객(나)에게 불편을 끼친 동족 부랴트인 청년을 대신해 사과를 한다. 나 때문에 청년을 조용히 타이르다가 오히려 청년에게서 큰 소리를 들었지만, 이 중년의 운전기사는 자신에게 분명 무례했던 청년을 관대하게 포용할 줄 아는 이해심 깊은 성품의 소유자로 보인다. 참을성이 부족했던 나와는 대조적이다. 작은 불편을 못 참고 소리 친 내 태도가 부끄러웠고 러시아인 승객들 앞에서 부랴트 청년에게 망신을 준 것 같아 그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순간, 1994년 1월 또는 2월의 어느 겨울날 모스크바의 한 상점 안 풍경이 떠올랐다. 내가 존경하던 철학과 교수님의 그리스인 제자가 모스크바에 다니러 왔을 때이다. 소련의 마지막 해인 1991년 박사 학위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갔던 그는, 다시 찾은 모스크바에서 감개무량함을 느낌과 동시에, 급격히 변화하는 러시아 사회에 확산된 대중들의 절망과 무기력을 보고 착잡해하던 터였다. 가게의 종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상점에 노숙자로 보이는 초췌한 남자가 들어섰다.
 
“저리 가요! 당신은 쓸모없는 작자야!(띄 니쉬또!)” 진열대로 다가온 그를 경멸스런 눈빛으로 쏘아보며 점원이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가 존칭인 ‘븨’(you) 대신 ‘띄’를 쓰고 사람을 지칭하는 ‘니크또’(nobody, 쓸모없는 사람) 대신 사물을 지칭하는 ‘니쉬또’(무가치한 존재, nothing)를 썼다며 러시아어 단어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리스 친구가 몹시 슬픈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니쉬또’라니...” 그때 그가 가슴 아파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의 휴머니즘은 가슴이었는데, 나의 휴머니즘은 단어들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부끄러움이 지금까지 남았다.
 
이르쿠츠크에서 후지르 마을까지 미니버스를 운전해 준 부랴트인 기사 아유르 씨. 사진/필자 제공
 
원주민과 이주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식으로, 동족인 아유르 씨가 만만해서였을까, 엉뚱하게 그에게 화를 내면서 자신이 밤새 한숨도 못 잤음을 강조하고 졸다가 버스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던 부랴트 청년은 알혼 섬에 도착하자 곧 길을 떠났다. 나의 편의를 위해 그와 자리를 바꿔 앉았던 러시아 청년의 어머니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여름 한철 일하러 온 거라 했으니, 그는 선착장 주변에서 기념품을 파는 많은 부랴트인들처럼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거나 다른 임시 일거리를 찾을 것이다. 동족처럼 생긴 ‘외국인’에게도, 수 세기 전의 ‘이주민’인 러시아인에게도 위축감을 느낀 듯이 보였던 ‘원주민’ 부랴트 청년에게 다시 미안해졌다.
 
알혼 섬 입구에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가게를 장식한 그림의 위와 중앙에 각각 '창조적인 작업', '알혼'이라 쓰인 글씨가 보인다. 사진/필자 제공
 
침략자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씌워 놓은 ‘미개함’ 같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요즘은 ‘선(先)주민’이란 용어를 쓰기도 하는데, 이 원주민이 수만 년, 수십만 년 전에 다른 대륙에서 이동해 왔다고 볼 때 넓은 의미에선 이들도 ‘먼저 온 이주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러시아 제국이 17세기에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토착민들 중 많은 종족들이 사라졌고 소수종족으로 살아남은 원주민은 러시아의 속민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혼 섬에서 만난 부랴트인들에게서 그와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러시아인은 중심부고 소수민족은 주변부다. 그들은 침략국의 이주민이었던 러시아인들에 비해 가난했고 소비에트 연방 70여년을 거쳤지만 지금도 러시아인들보다 가난하고 위축되어 보인다. 후지르 마을에서 숙소로 이용한 게르(몽골인들의 이동식 천막집) 호스텔의 주인이 러시아인 부부이고 그들 밑에서 일하던 부랴트인 부부가 번듯한 주인 집 옆의 작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일까?
 
후지르 마을에서는 유유자적하게 걷는 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사진/필자 제공
 
후지르 마을에 도착해서 아유르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카치알랸 마을에서 만난 나나이족이나 다른 소수종족들처럼 부랴트족도 여러 씨족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아유르 씨는 부계가 쫑골이고 모계가 에히리트와 불라가트다. 그는 부랴트 공화국의 구시노오죠르스크 시에 거주하지만 직장은 이르쿠츠크 시에 있다. 일거리를 찾아 이르쿠츠크 같은 대도시를 오가거나 여름철 아르바이트로 알혼 섬에 오는 이들이 부랴트인들만은 아니지만, 바이칼의 옛 주인은 오래전부터 ‘객’이 되어버린 듯하다.
 
아유르 씨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데네족이 바이칼에서 이동해 간 시베리아의 원주민이라는 학설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들을 찾아 읽는다. “한국인의 외모는 우리와 무척 닮았어요.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는 다르지요. 한국인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전설이나 풍습도 닮아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버스를 몰고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가야 했다. 부랴트인이 몽골 계통이라는 생각에, 문득 이르쿠츠크의 숙소에서 만난 몽골 유학생 아리우나의 말을 떠올린다. “러시아 접경지인 몽골 북부의 호수 훕스굴을 몽골인들은 바이칼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기획된 스투파
 
후지르 마을은 여름 성수기라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 또는 ‘푸른 눈’이라 불리는 바이칼은 이미 말했듯이 타이가 화재로 인해 온통 회색이라 잿빛 하늘과 구분이 안 되고 수평선은 사라졌다. 러시아인들과 함께 배로 돌아본 바이칼도, 차로 돌아본 알혼 북부도 뿌연 날씨 속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타이가를 불길에 빠뜨리고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을 흐리멍덩하게 만들어버린 이 화재의 한 가지 비밀에 대해 우리는 곧 다시 주목할 것이다.
 
나는 슬류쟌카에서 만난 폴란드 친구 아쉬까가 소개해 준 베라 씨부터 찾았다. 가족이 운영하는 투어라고 해서 찾아간 것인데, 알고 보니 ‘가족 운영’이 아니라 ‘부부의 아르바이트’다. 길가에 작은 부스를 세워 두고 투어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그녀의 본업은 교사, 이르쿠츠크에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알혼 섬으로 와 학교 교사로 근무한 지 9년째다. 그녀의 학교에는 1학년에서 11학년까지 292명의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한 학년 당 평균 26~27명꼴이다.
 
후지르 마을에서 만난 교사 베라 씨는 여름방학 동안 투어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진/필자 제공
 
열정적으로 투어 내용을 설명하던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이 일은 여름에만 하는 아르바이트예요.” 다음날 나와 러시아인 세 가족, 총 9명을 태우고 운전기사 겸 가이드를 해 준 그녀의 남편 꼴랴 씨의 본업은 베라 씨와 같은 학교의 스쿨버스 기사이고 투어 차량 운전은 역시 방학 중 아르바이트다.
 
나는 우선 바이칼을 둘러보는 모터보트부터 타기로 했다. 보트 투어가 예정된 프로그램을 건너뛰고 진행되었지만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베라 씨가 일러 준 스투파에 관심이 갔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다. 바이칼에서 ‘작은 바다’로 불리는 곳 중심에 위치한 오고이 섬은 깨끗한 섬으로 여겨졌고 아무도 살지 않아 왔다. 이 섬은 사람들의 과거 행위로부터 나오는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 자유롭다.
 
2005년 바이칼의 '작은 바다' 위 오고이 섬에 세워진 불교 스투파 '수부르가'. 사진/필자 제공
 
과거의 행위란 사람들의 업(카르마)이겠고 아무도 살지 않았으니 업에서 야기되는 것도 없었으리라. 어쨌든 그래서 2005년 이 섬에 불교의 신성한 ‘수부르가’(산스크리트어로 산의 ‘정상’이라는 뜻)가 세워졌다는 것. 이 스투파는 불교의 우주론에 따라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메루산 봉우리를 상징하는데, 메루산은 지구와 공간, 하늘을 통합하고 인류를 신성한 세계들로 연결하는 ‘세계 축’이 통과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베라 씨의 말에 따르면, 스투파 건설 기념식에는 여러 고승들과 샤만들, 러시아 정교의 총대주교도 참석했고 각 대륙에서 가져 온 흙과 모래 등이 캡슐에 넣어졌다고 한다. 자료를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2.5톤의 진언과 700킬로그램의 경전 사본이 스투파에 들어가 있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왜 이 스투파가 감흥을 주지 않는 것일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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