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깊은 반성' 언급한 나루히토 일왕, 한일관계 영향력 주목
정치적 의미에도 헌법상 적극역할 어려워…"말 한마디가 일본 국민에 영향" 기대감도
입력 : 2019-10-21 17:54:13 수정 : 2019-10-21 17:54:53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22일 즉위식을 갖는 나루히토 일왕이 향후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일본 헌법상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 자체로 '일본국의 상징'인 일왕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의견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21일 "전임 아키히토 일왕에 대한 연속선상에서 나루히토 일왕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이같은 생각이 '위시풀 싱킹(wishful thingking·희망적 사고)'에 멈출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전후헌법(평화헌법)에서 일왕은 '일본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되며 국정에 관해 일체의 권한을 가질 수 없다. 헌법이 정하는 13개의 국사행위도 내각의 조언·승인을 얻어 수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국정에 대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셈이다. 
 
집권 9년차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영향력이 높은 점도 변수다. 양 교수는 "현재 구도는 '강한 쇼군(아베 총리)과 약한 일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평화헌법에 대한 애착, 한국·중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전임 아키히토 일왕의 연속선상에서 (나루히토 일왕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무리한 기대를 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내에서 '한국이 일왕을 이용해 아베 총리를 견제하려 한다', '일본 헌법정신을 한국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반면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왕은 존재감 자체가 그대로 일본국과 통합의 상징이며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언급했다. 헌법상에 규정된 역할 이상의 영향력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나루히토 일왕의 대한국 관점이 호의적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호재다.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 직후인 지난 5월4일 "일본이 외국과 손잡고 평화와 발전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바 있다.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의 헌법·평화중시 기조를 계승할 것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지난 8월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역대 일왕들의 과거사 관련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재위했던 히로히토 일왕은 지난 1984년 9월 "양국 간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이 진심으로 유감"이라며 이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다음 해인 1990년 5월 "우리나라가 가져다 드린 불행한 시기에 귀국(한국) 사람들이 경험한 고통을 생각하면 저는 '통석의 념(몹시 애석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98년 10월7일에도 "우리나라가 한반도에 고통을 준 시대가 있었다"며 "이에 대한 깊은 슬픔은 항상 제 기억 속에 있다"고 전했다.
 
박명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외교관계에서 일왕의 발언은 당시 양국 간 관계와 무관하지 않으며, 양국 간 협상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아키히토 일왕은 여러 계기를 통해 한일 간 거리감을 줄이는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각각 영국 옥스퍼드대·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양 교수는 "이번 즉위식 행사는 처음으로 나온 '국제파 일왕'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며 "이미 5월 초에 (다른나라와의 평화를 언급한) 적절한 발언이 나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를 대표해 이낙연 총리가 즉위식에 참석하는 가운데 나루히토 일왕의 방한을 요청할지도 관심사다. 이 총리는 지난해 3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물포럼 당시 왕세자 신분이던 나루히토 일왕을 만나 "적절한 환경이 조성돼 왕세자의 한국 방문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다만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왕의 방한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직후인 지난 5월4일 국민을 만나는 '잇판산가' 행사에 참석해 마사코 왕비와 도쿄 황궁 발코니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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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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