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무명용사들을 위한 헌사
입력 : 2019-06-11 06:00:00 수정 : 2019-06-11 06:00:00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시간이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프랑스도 매년 6월이면 나치 독일에 대항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지난 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남부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처럼 지난 주 한국과 프랑스 양국에서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양국의 행사가 남긴 여운은 약간 달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념식 연설을 생략하고 조국을 위해 16세의 꽃다운 목숨을 바친 한 소년의 편지를 낭독해 애잔한 감동을 줬다. 반면 우리는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을 언급한 것을 두고 여야와 진보·보수가 갈등을 빚는 중이다. 왜 이렇게 사사건건 극한 분열을 이루며 싸우는지 애석하기 그지없다. 국가의 미래는 아랑곳 않고 지극히 원색적인 이념 분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자격이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프랑스는 이번 행사를 국민의 결속력을 굳건하게 다지는 또 한 번의 기회로 삼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읽은 편지의 주인공은 앙리 페르테(Henri Fertet). 페르테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나치에 붙잡혀 처형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페르테가 부모님께 남긴 비통한 편지를 300명의 퇴역군인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앞에서 읽어 내려갔다.
 
그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 제 편지가 큰 고통을 드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미 저는 당신들이 매우 용기 있는 것을 보았고, 저를 위한 사랑으로 이 용기를 앞으로도 간직하시리라 믿어요. 저는 조국을 위해 죽습니다. 저는 프랑스가 자유롭고, 프랑스인들이 행복하길 원합니다. 도도한 프랑스, 세계 제일의 프랑스보다 열심히, 그리고 근면하게 일하는 프랑스, 정직한 프랑스가 되면 좋겠어요. 행복한 프랑스인들, 이게 제일입니다…아빠, 이해해 주세요. 만약 제가 죽는다면 이는 선을 위해서예요. 제게 있어 이보다 더 명예로운 죽음이 어디 있을까요…안녕히 계세요. 죽음이 절 불러도 전 거부하거나 매달리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죽는 것은 힘들어요. 사랑합니다. 프랑스여 영원하라!"
 
이 편지는 페르테가 1943년 9월26일 총살형에 처해지기 직전 그의 부모에게 헌정한 것이다.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브장송에 있는 빅토르 위고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페르테는 론 강의 몽포콩(Montfaucon) 요새에 침투해 수문, 철도, 전기 철탑에 폭발물을 숨기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그러나 페르테는 부모의 집에서 잡혀 감옥에서 87일간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페르테의 편지는 1941년 17세의 나이로 독일인에 의해 총살당한 젊은 공산당원 기 모케(Guy Moquet)의 편지만큼이나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모케의 편지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낭독하고 프랑스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읽도록 요청했다. 프랑스인들은 그간 공산주의자인 모케는 영웅화했지만 가톨릭 신자 페르테는 잊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사형대로 끌려가기 직전 편지를 남겼다. 그러나 모케의 편지는 유명해진 반면 페르테의 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에서 페르테를 재조명하면서 프랑스인들의 결속력을 다졌다.
 
이처럼 프랑스는 기념식을 민족의식 보존의 장으로 삼고, 또 한 명의 영웅을 만들어 내는 기회이자 문화적 이벤트로 삼았다. 반면에 우리의 현충일 추념식은 해마다 있는 의례적인 행사에 그칠 뿐만 아니라 분열의 장으로 치닫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식에서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하며 하나의 대한민국을 염원했다. 그러나 김원봉 선생을 추념식에서 언급한 것을 두고 우리 사회가 통합되는 것이 아닌 또 한 번 갈라지는 불씨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25전쟁 때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나 파월장병도 많다. 그 중에는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청년들의 숭고한 죽음이 얼마나 많겠는가. 왜 우리는 말없이 죽어간 용사들을 재조명해 영웅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기념식에서 유명인만을 거론하지 말고 역사 속에 잠들어 있는 무명용사들의 일화를 발굴해 우리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민 결속력을 다져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는 역사를 재조명하고 숨은 영웅들을 찾아내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페르테의 편지를 통해 국민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새기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 피부로 절감하게 하는 프랑스 기념식을 보라. 우리에게 분명 주는 교훈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멋진 역사는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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