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형식 아닌 내용으로 논쟁하라
입력 : 2019-05-14 06:00:00 수정 : 2019-05-14 06:00:00
지난 주 한국사회는 또 한 번 소란스러웠다. 지난 9일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을 둘러싸고 갈등이 야기됐다. 국민과의 소통을 공약으로 내건 문 대통령은 그간 전임 대통령들과 다름없이 신년 기자회견만을 해 왔다. 따라서 취임 2주년을 맞은 문 대통령의 대담은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 대담은 한국방송(KBS) 송현정 기자가 질문을 하고 문 대통령이 답하는 일문일답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좀처럼 보기 드문 토론 형식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한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더 자주 이런 형식으로 전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송 기자의 태도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송 기자가 건방진 태도로 대통령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며 과도한 린치를 가했다. 반면 보수파들은 송 기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옹호하고 나섰다. 모처럼의 대통령 대담은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진보-보수로 또 한 번 갈라놓는 부작용을 낳았다. 진영 논리로 모든 걸 갈라치기 하는 한국사회. 과연 어디로 갈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대통령이 국민과 자주 소통한다. 대통령은 수시로 TV에 출연하거나 엘리제궁으로 기자들을 초대해 토론을 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 각각 한 명씩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토론하는 경우가 많다. 두 명의 기자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프랑스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지난 달 2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조끼 운동으로 혼란스런 프랑스 사회를 제대로 진단하고 치유 방법을 찾기 위해 4개월 간 국민과의 대토론(Grand Debat)을 벌여 이를 총 결산하는 시간으로 엘리제궁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 회견 직후 언론을 장식한 것은 마크롱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답변한 것들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는지 여부에 초점이 모아졌다. 언론들은 국민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 베에프엠(BFM) TV의 의뢰로 엘라브(ELABE)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설득력 있었다고 보는 프랑스인은 35%, 그렇지 않다고 보는 프랑스인은 과반을 넘었다. 응답자의 63%는 대통령이 소득세 인하를 획기적으로 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간소득층을 위해 소득세를 50억유로(한화 약 6조6000억원)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책이 믿을만하다고 평가한 국민은 단지 37%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78%의 프랑스인은 지난해 11월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란조끼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대책들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았다. 70%의 프랑스인은 마크롱 대통령이 벌인 국민과의 대토론이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들 중 77%는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조끼 운동의 위기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확신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단지 26%만이 마크롱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그들의 삶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36%는 국가 상황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4%는 지난 1월 마크롱 정부가 시작한 대토론이 대통령의 스타일과 방법론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지만, 76%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프랑스인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제안한 여러 대책 중 싱글맘에게 양육비를 제공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정원을 24명으로 제한하는 것을 가장 환영했다. 고급 공무원을 개혁하기 위한 ENA(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철폐에 대해서는 프랑스인들이 납득하지 못했다. 12%는 ENA의 철폐가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지만, 66%는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대통령 기자회견을 바라보는 양국 국민의 반응은 천양지차다. 한 나라는 대통령의 국정개혁과 비전을 알아보고 평가하는 장으로 이용하는 반면, 다른 한 나라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송 기자의 태도가 다소 불량했다 하더라도 이번 대담은 기자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고 문 대통령을 평가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제시한 국정개혁과 비전 그리고 철학 등이 설득력과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이성적으로 따져보고 평가했어야 한다. 진정 봐야할 것은 보지 못한 채 기자의 태도에만 집중해 과도한 소모전만 벌이는 것은 그야말로 주객전도다. 국민이 똑똑해야 정치는 발전하는 법이다. 하찮은 것에 매달려 진영싸움만 벌이지 말고 정치를 이성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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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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