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삶의 적난, '분노의 포도'
입력 : 2021-01-18 06:00:00 수정 : 2021-01-18 06:00:00
<뉴욕 타임즈> 기자이자 소설가이던 존 스타인 벡의 저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경제 대공황 당시 은행으로부터 생의 터전인 농장을 적난(賊難) 당한 톰 조드와 가족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82년 전 발간한 고전이나 가뭄과 경제적 어려움 등 비참한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한 이주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와 양극화 구조 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뇌인 작품이다.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한 농장을 동네 사람이 트랙터로 짓밟던 대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단돈 3달러를 받고 이웃인 톰 조드 농장을 짓밟아야했던 그도 가족을 먹여살려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자 일자리였다.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파는 소작농이던 서민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회 혼란이 야기됐고 구조적 폐해는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존 스타인 벡은 은행, 지주, 권력으로부터의 노동 탄압을 고발하며 1940년 퓰리처상의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현시대에 공존하는 문제의 본질과 참담함은 여전하다.
 
코로나발 충격으로 짓밟힌 서민들의 신음은 우리 모두의 목줄을 조여 올지 모른다.
 
지난 한해 휴업·폐업 등 일거리가 없거나 사업 부진을 이유로 발생한 비자발적 실직자가 22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통계 기준인 104만보다 두배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다.
 
특히 힘든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대면 서비스업, 임시·일용직들의 타들어 가던 마음은 차디찬 한기가 서려있다. 3차 유행 후 잔인한 계절로 불리는 지난해 12월 취업자는 전년동월보다 63만명 줄어든 규모다
 
이 중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20·30대는 각각 25만4000명, 24만6000명으로 총 50만명에 달하고 있다. 국내 관광업체의 2020년 1∼9월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97.6% 감소하는 등 사실상 고사직전이다.
 
올해 중소기업 경영 전망도 부정적이다. 응답기업 중 47.7%가 매출 감소를 예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양극화다. 
 
지난해 연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코로나 이후 ‘K자형’ 경제회복 과정의 양극화 심화를 우려한 바 있다. 오랜 시간 제기된 양극화의 그림자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불평등의 고조화로 불행한 계층을 더욱 양산할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향을 놓고 보편이냐 선별 지급이냐는 이분법적인 논쟁은 국민의 피로감만 더욱 가중시킨 한해였다. 선별적 소득지원과 보편적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고민하기 보단 국민만 희생하기 바라는 정쟁적 노림수에 분열만 조장한 꼴이었다.
 
‘영끌’과 ‘빚투’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돈이 돈을 버는 벼락거지의 박탈감은 일할 의욕마저 꺾고 있다. 부동산·증시 등 투자 광풍의 시대에 자산 없는 사람의 박탈감뿐만 아니다. 회사가 문을 닫거나 퇴직·해고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한 반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더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뚜렷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공개한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1분기 대기업 매출 전망치는 99로 기존 전망치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중소기업 지수는 88로 1포인트 하락했다.
 
양극화의 참상은 잔인하고 늘 비열하다. 그러나 엄습하고 있는 양극화 우려에 새해벽두부터 또 논쟁이다.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대립각은 ‘반시장경제’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기 전부터 ‘반시장 경제’로 매도하는 것은 글로벌 추세와도 맞지 않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의 카드는 기업소득환류세제였다. 미국은 시장만능주의인 레이건리즘을 벗어나 바이든 시대의 공동체 움직임을 시사하고 있다.
 
부디 올해는 마음을 열고 한 방향을 향해 국민 삶의 적난을 달래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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