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그는 뛰어난 공학도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대 공대의 전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잡지 <조선의 건축> 표지 공모에서 1등과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독(多讀)의 인문학도였다. 1936년 나이 스물일곱에 일본으로 건너가며 “조선에서는 더 읽을 책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듬해 2월 그는 도쿄에서 ‘불량선인’으로 체포된다. 폐병이 악화하면서 풀려났지만, 결국 그해 4월 눈을 감는다. 본명 김해경. 이상(李箱) 시인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있다. 이름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그는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한 물리학도였다. 특출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대학원 졸업 후 수년 동안 한 편의 논문도 쓰지 못했다. 답답했던 학과장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원래 너의 친구를 강사로 초빙하려고 했는데, 형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채용한 것이니 분발하라.” 치욕스러운 꾸지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추운 겨울밤에도 아이가 울면 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연구에 몰두하는 남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독려와 내조 덕분이었을까? 결국, 그는 1934년 ‘중간자’ 이론을 통해 원자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규명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때의 일이다.  무엇보다 이상은 천재 시인이었다. 수학, 물리학, 기하학 등 공학과 자연과학의 세계를 건축뿐 아니라 시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오감도(烏瞰圖)’에 이어 “사람은 광선보다도 빠르게 달아나는 속도를 조절하고 때때로 과거를 미래에 있어서 도태하라”로 끝나는 ‘선(線)에 관한 각서’에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괴델의 불완전성정리를 찾기도 한다. ‘삼차각설계도’와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는 공간과 기하학에 관한 그의 지적 감수성이 발견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융합형 인간이자 모던보이였던 청년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운명을 넘지 못한다. 그가 눈 감은 4월, 도쿄의 거리에는 벚꽃이 눈처럼 휘날렸으리라.      이상은 28세의 나이에 낯선 이국땅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했지만, 유카와 히데키는 그 나이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 그는 유학을 가지 않은 국내파였다. 하지만 중학교 4학년 때 당시 일본을 찾은 아인슈타인의 강연을 마치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듯” 들었다. 독일의 하이젠베르크와 영국의 디랙, 덴마크의 보어 등 당시 물리학의 변혁을 주도하던 젊은 과학자들(이들은 모두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을 일본에서 직접 접하며 자극을 받았다. 중간자 발표 이후 물리학계의 스타가 된 유카와 히데키는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소, 컬럼비아대학 등의 초청으로 미국에 체류한다. 그리고 1949년 그곳에서 노벨 물리학상 선정 소식을 듣는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두 청년의 삶은 식민지 조선과 침략국 일본의 운명만큼이나 엇갈린다. 과학저술가 정인경 박사는 <뉴턴의 무정한 세계>에서 이 두 청년의 삶을 이렇게 비교한다. “한국문학계를 빛낸 천재 시인 이상은 1910년생이다. 이상보다 3년 일찍 태어난 유카와는 28세의 나이에 중간자를 발표하고 세계무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이상은 28세가 되던 1937년에 도쿄에서 ‘불량한 조선인’으로 체포된 뒤 폐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한 명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건축학도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횡사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식민지 본국 일본에서 태어나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엇갈린 운명이 어디 이들뿐이랴.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소녀는 위안부가 되었다. 상당수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살아남은 소녀는 고통과 치욕 속에 살아야 했다. 수필 ‘인연’에 등장하는 아사코가 화병에 담을 스위트피를 꺾고 있을 때, 남자(피천득)에게 자신의 하얀 운동화를 자랑할 때, 조선의 소녀들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능욕당하고 병들고 죽었다. 위안부와 이상의 운명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날개를 채 펴보지도 못하고 무참히 꺾이고 추락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역사는 멈춰있다. 10억 엔을 줬으니 약속 지키라고 으름장 놓는 일본보다 “부산 소녀상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자”고 말하는 우리 정부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우리 땅에서의 추모와 기억의 방법조차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주권국가가 아니다. 우리 땅에서 상징물조차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는 어떤 밀약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효다. 10억 엔을 되돌려주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목 놓아 노래했던 천재는 날개가 돋기는커녕 여전히 박제가 되어 있다. 이제 그를 마음껏 날게 하자. 그럴 때도 됐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불확실성 지수와 실물경제의 괴리지난해 여름 영국의 브렉시트로 시작된 불확실성의 시대는 오늘도 진행중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나라 안에서는 대통령 탄핵심판이 한창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특별검사 조사 중이거나 조사를 앞두고 있다. 곧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을 앞두고 시장은 그가 내뱉은, 또 내뱉을 말에 숨죽이고 있다.  불확실성을 넘어 초불확실성 시대라는 경제당국 수장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싶다.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고 하는데 어디 한 곳이 터지고 깨져도 '그럴 줄 알았다'하며 크게 놀랄 것 같지 않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지표로도 나타난다. 경제정책불확실성(EPU·Economic Policy Uncertainty) 지수다. 각국 언론에 등장한 불확실성 관련 키워드 빈도 등을 반영한다. 한국의 경우 '불확실성', '정부', '청와대', '당국', '규제', '한국은행', '적자' 등이 키워드다. 정치경제적으로 큰 이벤트가 있을 때 보조적으로 활용되는 지표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불확실성 체감도를 보여준다. 브렉시트가 있던 지난해 6월 280포인트 수준이었던 한국의 불확실성지수는 정치스캔들이 있던 연말 400포인트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EPU 지수와 실물시장이 다소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장관계자는 이를 두고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스피지수도 몇 년째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잔류를 선택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때는 안전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영향이 컸지만 이후 '중앙은행이 어떻게 돈을 푼다'하는 대책들이 나오면서 시장은 안정을 찾았고, 이후 이와 비슷하거나 더 큰 불확실성 요소가 등장해도 전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는 말이다. 외환시장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가 누누이 강조했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또 다시 거론했다. 국내에서는 주미한국대사관이 미 재무부 문의를 통해 현재의 무역촉진법이 아닌 과거 종합무역법에 의해서도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하고, 국책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이 조만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불확실성을 키웠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대사관이 왜 나서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옛날 법으로 지정받을 수 있는 거 언제는 몰랐나. 그런데 그 옛날 법이라는 게 제재 조항이 막연하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더라도 상상하는 그런 엄청난 효과는 없다는 점도 같이 짚어줘야 하는데...'라며 답답해했다. 생략된 뒷말을 짐작해봤다. 설레발일지, 호들갑일지. 짚어줘야 할 입장에서 이러나저러나 난감했다. '내성'은 '역사'의 다른 말이 아닌가 싶다. 오늘, 내일만 보다가 어제 어땠는지 잊고 불안감만 높이는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