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박해광, 기억할게"임채원 경희대 교수내일은 5·18. 벌써 한 달이 되어 가네. 광주 영락공원에 지난 4월23일에 묻혔네. 고향인 경남 마산이 아니라, 광주에서 영원히 머물기로 한 것도 자네다운 선택이라 생각하네. 자네는 무덤이 아니라, 광주 사람들의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 믿네. 장례식 날에 자네의 전남대 첫 제자인 5.18연구소의 김희송 박사에게 물었네. "박해광은 광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자네가 전남대 5·18연구소 소장을 맡고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5·18기념관에서 함께 지냈던 김 박사는 "외부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광주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더이다. 당사자가 자칫 연고와 관계를 중심으로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는 지점에서 외부자의 눈으로, 그리고 전공인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광주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설계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더이다. 조금만 더 버티어 보시지 그랬나? 5·18의 39주기가 되기 직전에 한국 사회가 그토록 광주의 실체적인 진실에 대해 알고 싶었던 증언들이 나왔네. 며칠 전 5·18 당시 광주에서 주한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 씨가 역사현장을 다시 찾아 5·18은 신군부에 의해 기획됐다고 결정적 증언을 했네. 그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헬기 사격'이 다시 한 번 사실로 확인되었네. 국군이 자국 국민에게 헬기에서 사격을 하는 끔찍한 일이 사실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추측만 무성했던 '편의대'에 의해 광주를 폭동으로 몰아갔던 것도 증언되었네. 그는 39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광주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하네. 헬기에 탄약을 지급했던 당시 보급부대의 내부 증언도 나왔네.  또 다른 증언도 있네. 5·18 당시 시민들의 반대편에 있었던 진압군 중에서 누군가 양심선언 하기를 많은 사람들은 기다려 왔네. 지금은 목회 활동하고 있지만 5·18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 이경남 목사는 지난 1999년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저지른 학살극을 최초로 고백한 데 이어, 김용장 씨가 증언했던 날 다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시민군의 반대 쪽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생생히 증언하고 있네. 시위대를 잔인하게 다루라고 사전교육도 받았다고 하며, 장갑차에 깔렸던 어느 군인에 관한 증언도 신군부와 다른 진실을 전하고 있네.   5·18의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는 데, 4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네. 87년 민주화 이후 광주 청문회를 거치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민들이 알고 싶었던 역사적 사실은 중요한 많은 부분들이 시간이 쌓이기를 켜켜이 기다리며 오늘까지 묻혀져 있었네. 두 차례의 민주정부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장기간에 걸쳐 조사를 했지만 진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네. 남아공의 국민통합 정신을 본받아 이 위원회가 우리나라에서도 구성되었지만 5·18의 정작 중요한 부분들은 여전히 가려져 있었네. 때로는 엉뚱하게도 보수언론에서 화해에 방점을 찍고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조차 있었네. 그러나 진화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화해 이전에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믿네. 그 실체적 진실 위에서 진정한 화해도 가능한 일이네. 그 실체적 진실이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양한 증언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보이고 있네. 그러나 정작 이 중요한 시점에 이 일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자네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네. 아쉽고도 아쉽네. 자네가 2004년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갈 때만 해도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네. 고등학교까지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으로 성장했고, 대학 이후에는 서울에서 보냈기에 낯설은 광주 가서 적응은 잘 할까 하고 우려하기도 했네. 다른 한편으로 노동사회학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한 자네가 그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면 영남과 호남의 동서화해에도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네. 그곳에 가서 초기에 친구들이 했던 우려와 달리 광주에 터를 잡고 그 속에서 많은 의미 있는 일들을 속속히 진행하는 소식들을 전해 들었네.  2015년부터 2년 동안 전남대 5·18연구소장을 맡아 광주를 외부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당사자들이 하기 힘든 말들로 찬찬히 전했다고 들었네. 학내에 5·18기념관도 자네와 제자들의 손으로 조그만 문구 하나까지 섬세하게 준비했다고 들었네. 영결식 이후 학교로 간 자네의 영정이 머문 곳도 연구실과 함께 5·18기념관이었네. 그만큼 전남대 분들에게, 그리고 광주 분들에게 자네는 5·18소장으로 기억되고 있네. 그곳에서 영정을 들고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자네의 끈기 있는 5·18에 대한 기여가 생생해졌네. 며칠 전의 새로운 증언들과 함께 자네가 그동안 쌓아놓았던 일들이 오래오래 빛을 발할 것이네. 2017년에는 광주 더나은일자리위원회 실무위원장을 맡아 광주형 일자리에서 실질적인 밑그림의 마지막을 자네가 맡았었네. 석사와 박사 논문 주제가 노동사회학이었던 자네가 이 일을 맡은 것은 그 동안의 전문성을 평가받은 결과였네. 자네의 열정과 전문성 덕분에 광주형 일자리 밑그림이 완성되었다고 믿네. 우리 나이로 53세인 자네는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네. 7년 이상 암투병을 하면서도 주위에 알리지 않았던 자네가 야속하기도 하네. 최근에 호전되다가 이렇게 훌쩍 우리 곁을 떠났네. 광주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자네는 우리 곁에 없네. 외부자의 따스한 시선으로 광주를 사랑했던 광주 사람, 죽어서도 광주에 혼을 묻은 나의 친구 박해광, 광주의 박해광으로 기억할게.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소주성' 보완 정책 내놔야 할 때지난달 청년 실업률이 2000년 4월 이후 19년 만에 최악을 기록한 배경에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에 따른 부작용으로 민간 일자리가 줄었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이 대거 공무원 채용에 몰려든 것이다. 실제 현 통계에서는 채용 시험에 응시하면, 취준생(비경제활도 인구)신분을 벗고 실업자로 분류된다. 정부는 지난 15일 통계청의 4월 고용동향 발표에서 청년 실업률(15~29세)이 11.5%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오자, 공무원 채용일정이 기존 3월에서 한 달 미뤄진 효과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채용에 몰려든 배경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통계청 발표 직후, 기자는 산업별 취업자 현황 자료와 경제 전문가 등을 통해 실업률 쇼크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등의 정부 재원이 투입된 일자리는 1년 전부터 매달 10만~20만명 이상 증가한 반면, 제조업 등 대표적 민간 일자리는 13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민간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니 취준생들은 최근 매년 채용을 늘리고 있는 공무원 시험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공무원 채용 확대는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일자리가 감소할 때마다 공공 일자리 확대를 대안으로 내걸었다.  공무원 채용 확대를 부추긴 것도 정부 정책이다. 실제 현장에서 일자리 문제를 취재하다 보면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로 부터 '소주성' 정책의 문제점을 자주 듣는다. 미중 무역갈등과 브렉시트 등 대외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은 규제로 작용해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뒤늦게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 등의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기자가 취재한 서울의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작은 배와 달리 막대한 시간을 소요한다고 지적했다. 항공모함은 정부 정책을 의미하는 데, 이른바 소주성의 부작용을 알고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어 당분간 경기 개선은 어렵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소주성을 추진했던 2017년,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이러한 고용 악화를 우려했고 이를 외면하고 도입한 지 2년이 지나 실제 현장에서 이같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보고 싶지 않은 통계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보다는 드러난 정책 실패에 대해 인정하고, 더 늦기전에 보다 나은 방안들을 내놔야 할 것이다. 정책부 이진성 기자 jin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