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빅딜설의 문명론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북핵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으로 가장 타당성이 높은 것은 헨리 키신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알려진 미국과 중국의 '빅딜설'이다. 핵심 개념은 중국이 미국과 협력, 핵 보유를 포기하지 않는 김정은정권을 붕괴시키는 대신 남한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최소화해 중국이 미국과 직접 대치하는 상황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정권 붕괴와 주한미군 철수를 빅딜, 동아시아 국제정치 패러다임을 70년대 데탕트 이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구상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70년대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닉슨 독트린을 구상하고 실행했던 90살의 노객 헨리 키신저가 있다. 공화당 국제정치 싱크탱크의 막후 실력자인 그는 다시 한 번 동아시아 정치의 거대한 변화를 기획하고 있다. 대담한 구상이다. 키신저는 방글라데시 국경을 위장한 채로 넘어가 주은래와 협상, '죽의 장막'을 걷어낸 인물이다.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와 함께 냉전체제 이후 유지돼 왔던 미국의 동아시아 정치체제 자체를 변화시켰다. 현실주의를 강조하는 미국 공화당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게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만을 외면했다. 그는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어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치의 흐름을 그대로 추인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도모했다. 2017년 북한의 김정은은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사실상 핵 보유국의 능력을 공인받았다. 그는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시간을 벌어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서 능력을 확보할 심산이다. 미국이 이 상황을 방치하는 순간, 시간은 김정은의 것이 된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김정은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전에 김정은을 제거하거나 핵 능력을 무력화시켜야 하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보수 세력들은 김정은정권의 무력화라는 과제가 절박하다. 미국이 예전 같지 않게 국력이 쇠퇴기에 들어섰고 트럼프 정부는 고립주의로 미국 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팽창주의 정책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이 두 세력의 간극 사이를 비집고 자력갱생의 핵 보유를 꿈꾸는 북한이 있다.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중국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달가울 리 없다. 때문에 핵 보유 의지로 똘똘 뭉친 김정은정권의 무력화에 이해가 일치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패권구도의 역학관계와 자국 이해의 충돌에 대한 묘수 풀이 끝에 키신저가 트럼프에 해답을 제시했다. 미중은 이 해법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북핵 실험 이후 나온 정치적 상상력 중에서 지금껏 이만큼 트럼프와 시진핑이 각자의 이익을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 한국 정부가 역동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질서는 70년대 데탕트 국면 이후 다시 한 번 키신저의 묘수 풀이대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키신저의 빅딜설을 국제정치의 권력게임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론으로 해석하면 대한민국에는 어떤 대안이 나올까.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에게 지적 영감을 줬던 아놀드 토인비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4세기에 <역사 서설>을 쓴 이슬람의 지성 이븐 할둔에 따르면, 문명에는 '제국'과 '변경'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문명은 제국이 아니라 변경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특히 이븐 할둔은 그 변경에서 '연대의식'에 의해 새로운 문명이 가능하다고 봤다. 토인비와 이븐 할둔은 문명의 중심인 제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위기로 역경을 겪는 가운데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새 문명이 발현된다는 공통의 인식을 가졌다. 한국은 미국 문명과 중국 문명 사이에 낀 변경이다. 한국에 위협은 힘을 중심으로 한 이 두 개의 패권문명뿐만 아니라 남한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북한의 군사적 핵 무장까지 감수해야 하는 역경 속에 있다. 키신저의 빅딜은 한국에게 위기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은정권의 붕괴'와 '주한미군 철수 및 전시작전권 회수'는 주권국가인 한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정책 방향이 될 수 있다. 400년 전 임진왜란 이후 한국은 문명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국 군대를 가진 독립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에서 작전지휘권은 명나라에 있었고, 19세기 개항기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에서도 청나라와 일본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전작권은 미군이 갖고 있었다. 문명론의 입장에서 보면 전작권 회수는 사실상 400년 동안 방치돼 있었던 자주독립국으로서의 국방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빅딜설의 함정은 김정은정권 붕괴 이후 북한의 관리와 처리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함정을 벗어나는 길은 남한과 북한 주민들의 연대와 교류다. 10월이면 촛불혁명 1주기다. 남북의 이해관계를 넘어 이 촛불시민들이 북한 주민들에 대해 이븐 할둔이 얘기했던 연대의식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새로운 대한민국의 문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선물보따리 안겨준 부총리의 방미지난 12일(현지시간) 밤 9시30분. 미국 워싱턴 D.C.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리고 있는 IMF 회의장 앞은 술렁였다. 회의도중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동행기자단에 기자설명회를 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설명회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함께 배석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은 '빅 뉴스'를직감했다. '빅 뉴스'는 선물이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56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3년 연장한 것이다. 지난 10일 한·중 통화스와프가 종료된 이후 연장 소식이 없던 터라 워싱턴에서 전해진 희소식은 한국경제에 큰 선물이 됐다. 통화스와프가 국제금융시장의 안전판으로, 상대국과 경제협력의 좋은 상징과 수단일 뿐 아니라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를 녹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발표될 '환율보고서'에 대한 리스크도 잠재웠다. 취임후 처음으로 열린 스티븐 므누친 미국 재무장관과의 양자 회담에서 부총리는 정부가 환율을 자의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피력했다. 부총리는 "다음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고, 회담에서도 미국 국제담당차관과 시걸 만델커 테러금융정보차관 등 미국 재무부 양차관이 함께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실제 김 부총리는 6일간의 방미 일정 동안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회의 참석 뿐 아니라 므누친 미국 재무장관,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스탠다드앤푸어스(S&P)·피치의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 담당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대통령 보좌관 등을 만나는 등 쉴 틈 없는 경제외교를 이어갔다. 그 결과 부총리는 한국경제에 악재로 꼽혔던 미국과 중국의 긴급 현안을 풀고 귀국하게 됐다. 또 북한리스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등 의미 있는 외교성과를 냈다. 다만 앞으로도 한·미 FTA문제, 중국 사드보복 등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불씨가 산적해 있다는 점을 인식해 얽히고설킨 경제외교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잇단 선물을 계속 준비해 주길 기대해본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