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잠수함앤서니 퀸이 열연했던 영화 <25시>는 게오르규의 소설이 원작이다. 루마니아의 산골 농부였던 주인공 요한(앤서니 퀸 분)은 유대인으로 몰려 수용소로 보내진다. 탈출하다 붙잡힌 요한은 다시 독일 군수공장으로 끌려간다. 어느 날 요한의 머리를 잰 독일 친위대 장교가 그를 아리안족의 대표적인 순수혈통으로 판정한다. 요한은 수용소장에 임명되고 독일의 영웅이 된다. 영화에서는 골상학, 혹은 우생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탄생한 우생학(Eugenics)은 유전적 요소가 후대의 형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골상학(Phrenology)은 두개골 및 두뇌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이다. 두 학문은 우수하고 건전한 유전자를 늘리고 열악한 유전자를 지닌 인구 증가는 막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적 근거로 사용됐다. 결과는 끔찍했다. 우생학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미국은 차별적인 이민법을 만들었고, 서구에서는 ‘열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을 거세했다.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한 이론적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사이비 과학의 요소가 많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탄탄한 근거를 가진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25시>에서 나치 친위대 장교가 요한을 순수혈통의 아리안족으로 판정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줄자로 머리의 가로세로 크기를 잰 것이 전부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우생학이 가져오는 사회적 해악에는 무관심했다. 유대인과 같은 특정 민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가 희생양이 됐다. 또 인종 우월주의나 극단적 민족주의에 빠졌을 때 과학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이슈가 명멸하고 부딪히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크고 작은 집회만 십여 개가 된다고 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찬반 집회와 여전히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보수단체의 집회는 전통적 가치의 집회다. 이와 달리 퀴어 축제, 난민 반대 집회 등은 이제 한국도 새로운 가치가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항공사 오너의 갑질 규탄 집회도 종전의 노동자 집회와는 또 다른 성격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고 뒤섞이면서 발전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우려스러운 것은 여전히 일부 단체의 주장에는 극단적 순혈주의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창궐했던 ‘사이비 과학’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슬람 난민과 성 소수자를 향해 쏟아내는 주장에는 근거 없는 공포와 분노가 담겨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두렵고 화나게 했을까? 더 개탄스러운 일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 불평등과 불합리한 구조에서 피해를 입었던 여성의 일부가 자신들을 공격하고 욕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 사회에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극단적 용어와 퍼포먼스에 어떤 의미로든 동의할 수 없다.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게오르규는 독일 잠수함 승무원이었다. 당시 잠수함에는 토끼를 태웠다. 토끼는 잠수함의 맨 아래에서 생활한다. 잠수함의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겨 공기가 탁해지면 토끼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 광부들이 탄광의 유독가스를 판별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던 것과 비슷하다. 어느 날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의 토끼가 죽었다. 그러자 평소 감수성이 예민하고 환경 변화에 민감했던 게오르규가 그 역할을 맡게 됐다. 밀폐된 잠수함 맨 아래에서 공기에 이상이 없는지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게오르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오르규는 작가를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했다. 이상 징후와 위기의 경고음을 아무도 모를 때, 그것을 가장 먼저 감지해 알리는 사람이 바로 작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성 소수자, 난민, 노동자 등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의 이음동의어다.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잠수함의 토끼’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어 있을 때 그것의 위험성을 가장 민감하게 알아채고 경고음을 내주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분출되고, 어떻게 용해되느냐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평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김형석 과학칼럼니스트·SCOOP 대표( blade31@daum.net) 


’전참시’, 너도 날 웃겨봐라 어서!지난 7일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을 보다 경악했다. 배우 신현준에게 발달장애인 연기를 강요하며 웃고 떠드는 패널들 장면에서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곧이어 생각 없이 웃고 떠드는 그들의 무지에 참담함이 밀려왔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이날 방송에선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그들은 이날 개그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날의 웃음은 분명한 폭력이었다. 공공재인 지상파를 이용한 폭력. 그것도 피해자가 분명 존재한 폭력이었다. 다행일까. 방송 이후 여러 매체에선 그 방송을 비판한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또한 잠깐일 것이다. 연예 기사의 소비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정확하게 7년 전이다. 아들이 발달 장애 판정을 받던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정신이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단 공포감이 밀려왔다. 슬퍼하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릴지 모른단 불안감이 밀려왔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보자. ‘영구’ ‘맹구’ ‘오서방’ 등등.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한 캐릭터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웃었다. 그들의 ‘바보’ 흉내에 의심 없이 낄낄대며 배꼽을 잡았다.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즐겼다. 우리가 영구와 맹구를 보며 웃는 동안, 그들 캐릭터 모티브가 된 발달 장애인들은 그저 웃음거리로 조롱과 희롱 그리고 난도질 당했다. 이건 분명하다. 다시 돌아와 ‘전참시’다. 패널들은 신현준에게 ‘기봉이’ 흉내를 요구했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 속 실존 인물 엄기봉씨가 주인공이다. 과거 한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의 생활이 모티브가 된 영화다. 당시 전 국민이 기봉이 연기를 한 신현준의 ‘하나 올리고~ 하나 더’를 외치며 고기집에서 쌈 싸먹는 모습을 즐겼다. 장애가, 장애인이, 웃음과 조롱과 희롱의 경계선에서 치이고 밟히고 짓이겨진 순간이었다. ‘코미디는 코미디로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코미디에서 웃음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주체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지만, 틀린 게 아닌 같은 사람이라면. 그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혹시 당신은 이걸 ‘풍자’라고 부를 텐가. ‘전참시의 무지’. 이날 그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짓밟았다. 출연했던 그들도 짓밟힌 예의를 외면했다. 그들이 흉내 내며 웃음과 희롱의 ‘도구’로 사용한 장애인이, 나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독촉했을 뿐이다. 어서 흉내내보라고. 흉내 내서 나를 웃겨보라며 깔깔대고 웃고 조롱했다. 그 잔인한 폭력을 지켜보다 옆에 있던 아들을 바라봤다. 뜻 모를 외계어를 쏟아내며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 아이가 살아나갈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가슴이 답답하다. 김재범 뉴스카페팀장(kjb517@etomato.com)